[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남겨진 사람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그날의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사고는 이른 아침에 일어났지만 내가 그 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교시 수업을 5분 남겨놓은 때였다. 복도에 나갔다가 옆 반 친구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날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은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후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희생자 중에는 같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M여고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말은 희생자 중에 우리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아침,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우리 반으로 달려와 사망자 명단에 A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A는 중학교 때 우리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였다. 나는 크게 놀랐지만 1년 전에 교정에서 마주쳤던 그 친구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친구와 나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졸업한 이후로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친구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을 그녀의 부모님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떠올릴 때 비로소 사무치게 다가왔다.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휴대전화와 SNS 덕분에 어떤 소식이건 빠르게 전달받는다. 하지만 슬픔과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속도를 빨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여전히 떠나간 사람들과 함께 먼 과거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지인들과 웃으며 농담을 하겠지만 흉터는 언제고 다시 벌어져 그들을 깊은 슬픔의 수렁에 빠트릴 것이다. 죽은 이만큼이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죽은 이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로 남겨진 이들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이를 하염없이 그리워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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