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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승욱] 창의적 뚝심도 필요하다



언론이 북핵 문제의 창의적 해법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한 것은 2017년 가을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고 언급할 수밖에 없었던 때다. 생각해보면 그해 9월은 살벌했다.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괌·하와이를 사정거리에 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쐈다. 유엔 안보리는 결국 유류 공급을 제한하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언급한 뒤 ‘죽음의 백조’ B-1B 전략폭격기가 비무장지대(DMZ)를 선회했다. 평양은 “트럼프는 망나니, 깡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욕을 퍼부었고, 서울 사람들은 전쟁을 걱정하며 집에 라면을 사둬야 할지 고민했다. 문 대통령이 2개월 전 독일에서 천명했던 ‘베를린 구상’은 분수를 모르는 허망한 이야기로 평가절하됐다. 그랬기에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따져보면 창의적 해법이라는 말 자체가 심하게 꼬인 남북 관계를 전제한다. 상식으로 풀린다면 굳이 창의적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 2007년 10·4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비핵화가 먼저냐, 경협이 먼저냐의 판에 박은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가 북핵 위기 돌파를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 창의적 노력, 창의적 제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세부적인 방법과 순서는 조금씩 달랐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당사자와 주변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체제까지 담긴 개념이었다. 절차는 중국의 기본 입장인 쌍중단·쌍궤병행과 비슷하고, 종전선언만 떼어 말하면 북한의 주장도 수용했다. 북한의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이루겠다는 관점에서 보면 위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출범 초기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창의적 지략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창의적 노력을 언급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장(CFR)이 문 대통령에게 외교적 해법의 창의적 방안을 충고하면서 창의적 해법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안에 담긴 ‘대담한 내용’에도 익숙해졌다. 그 중간 성적표가 지금의 남북 관계다. 계기는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과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였지만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았다. 결국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 실제로 이뤄졌고, 북·미 수교가 북핵 위기의 현실적 대안이 됐다. 지금은 보수야당조차 여기에 국가보안법을 들이대지 않는다.

문재인정부는 객석에서 눈치만 보던 북핵 문제 당사국들을 무대에 올려놓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북한조차 좀처럼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앞세운 굿이너프딜(good enough deal)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거절당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열심히 찾은 창의적 해법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국은 외교적 푸대접으로 대응했고, 북한은 오지랖 운운하며 똑바로 하라는 경고장을 보냈다. 빅딜과 스몰딜 사이에서 타협할 만한 중간 지점이라는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성급하게 꺼내 들어서인지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노이와 워싱턴 회담이 끝나고 미국과 북한의 생각은 대부분 드러났다. 이제 미국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북한에 물어보고 오라는 식이다. 북한도 뒤통수 맞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만날 이유도,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스탠스를 한동안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초조할 이유가 없다. 억지로 만남을 주선한다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찾아낸 창의적 해법은 아직 작동 중이다. 지금은 오히려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뚝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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