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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있는가



중도개혁 정당 표방했지만 중도도, 개혁도 실천 못해
희망을 고문하지 말고 희망이 없다 말하는 게 솔직

노선 정립 끝장토론을 하거나 대주주들이 새 판을 짜는 것이
봉합을 통한 현상유지보다 훨씬 나은 선택일 듯


바른미래당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자초한 위기이자 예고된 위기다. 바른미래당은 스스로 중도개혁정당임을 자처했으나, 중도가 무엇인지도 개혁이 무엇인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고, 전략도 공란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 광범한 정치적 공간이 있지만 이 공간은 여전히 빈 채로 남아 있다.

고전 정치철학에서 중도라는 말은 멋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 사이에 황금의 중간점이 있고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미덕이라고 설파했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황금의 평균(golden mean), 이것을 중도라 부른다. 공자는 ‘중(中)은 천하의 기본이고, 화(和)는 도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설파했다. 공자에게 중은 흔들림이 없는 내적 균형을, 화는 복잡한 현실에서 여러 요소와 작용들의 동태적 조화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내적 중심을 잡고 순기능과 역기능을 충분히 고려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화이다. 또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용이다.

이는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동태적 균형 감각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도란 기회주의와 혼동돼서는 안 된다. 또 중도란 단순히 중간지대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점과 상황에서 주어진 정치적 과녁을 ‘적중’시키는 것을 뜻한다. 극단을 흡수해 트라이앵글의 꼭짓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나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중도는 자칫 잡탕 정치의 대명사로 전락한다.

불행히도 바른미래당이 이 길을 걸었다. 출발부터 노선과 가치 중심의 의기투합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다. 따라서 감동이 없었다. 진보냐 보수냐 안팎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에게 자신 있게 내세울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를 괄호에 묶어버리고 나면 사안별 대응만 남는데 이 또한 탁월한 대안이 없는 한 샌드위치 신세를 면키 어렵다. 여야 양쪽에서 2중대 비판을 듣거나 아니면 여기도 찔끔 비판 저기도 찔끔 비판하는 양비론의 함정에 빠져 존재감을 잃기 십상이다. 선거법 협상이 딱 그랬다.

손학규 리더십은 이런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에 게을렀다. 사실 바른미래당에는 대중적 인지도와 역량을 갖춘 정치인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개인기만 발휘하지 당의 힘으로 결집하지 못했다.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응집된 메시지와 행동이 없는 한 당은 모래알일 수밖에 없고, 개별 정치인의 임시 거처로 기능할 뿐이다.

전략이 없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창당 이래 정부 여당의 실정이 조기에 드러나고 자유한국당이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임에도 바른미래당의 정치적 입지는 확장되기는커녕 쪼그라들었다. 단체장과 지역구 광역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한 지난 지방선거가 신호탄이었다. 얼마 전 4·3 보궐선거의 참패는 내년 총선의 예고편과 같다. 정당의 전략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승리의 희망을 주는 모든 수단이다. 국민이 매력을 느낄 인물을 발굴해서 간판으로 만들거나, ‘눈에 확 들어오는’ 이슈 파이팅을 하거나, 삼분지계를 제대로 써서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거나 뭔가 되는 집이라는 기대를 품게 해야 한다. 특히 20대에서 40대까지 폭넓게 포진한 합리와 공정을 중시하는 ‘자유의 세대’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전략이 있어야 했다. 두 거대정당의 자충수에 기대어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요행수 심리’는 전략이라 할 수 없다. 국민은 냉정해서 노선이 불분명하고 승리 가능성이 없는 정당은 외면한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중도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바른미래당 지지가 10% 아래다.

모든 길은 총선으로 통하는 지금, 자력으로 지역구 당선자를 낼 수 없는 정당에 내홍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러나 그 내홍이 거듭나기를 위한 진통이 아니라 사업에 실패하고 남은 재산 정리를 둘러싸고 싸우는 형국이라 더욱 볼썽사납다.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네가 가라, 하와이!’를 외치는 모습에 무슨 중용의 미덕을 기대하겠는가.

과연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있을까. 현재로서는 희망을 고문하기보다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솔직하다. 물론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니 앞으로 하기 나름이다. 그렇지만 자명하게 보이는 점이 있다. 봉합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끝장 토론을 통해 새로운 노선과 전략을 정립하고 판갈이를 하든, 아니면 대주주들이 직접 나서 족쇄를 걷고 새판 짜기에 나서든 어설픈 봉합보다는 나을 것이다. 파격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는 한 바른미래당은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질 것이다. 현상 유지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죽는 길이다. 그나마 재목이 될 수 있는 정치인들의 앞길만 막을 뿐이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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