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청와대, 뻗댈 때 아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선 로저스’ 별명 얻고 야당의 검찰 고발 앞둔 상태
‘그래도 우리는 간다’는 오만함은 해법일 수 없고 청와대 멍들게 할 뿐


지난 11일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이런 성명서를 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부부는 30억원대의 주식을 소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권리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할 헌법재판관이 과도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국민 정서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 내부 정보 활용 등 불법적인 거래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이 후보자와 배우자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의심될 만큼의 거래를 했다.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법관 재직 시 주식거래는 1200회가 넘고, 배우자는 4090회가 넘는다고 밝혀졌다. 이는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이며 투자가 아니라 투기 수준이다. 이 후보자는 남편이 해서 몰랐다는 식의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공직 후보자로서 무책임한 행태이고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이 후보자는 자격이 없으므로 즉각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부동산 투기 후보자들을 대거 추천한 것도 모자라 주식 투기 후보자를 검증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인사 검증 책임자는 책임질 것을 촉구한다.”

경실련 성명을 다시 적은 이유는 여론과 상식을 비교적 제대로 담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경실련 지적대로 일단 주식 보유액이 너무 많다. 42억여원의 재산 중 35억여원어치가 주식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의 해명은 ‘주식투자는 남편이 전적으로 혼자 해서 모른다’ ‘남편이 부동산을 잘 몰라 주식을 샀다’가 거의 전부다. 무책임하고 생뚱맞다. 여당 내에서조차 혀를 찼을 정도다. ‘남편 탓’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아내 탓’을 연상시킨다. ‘부동산을 잘 몰라 주식을 샀다’는 답변 역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할 말인지 의문이다.

이 후보자에게는 ‘미선 로저스’란 별명이 생겼다. 민주평화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이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불공정 주식거래로 유정 버핏이란 오명을 쓰고 낙마한 이유정 후보에 이어 두 번째다. 고르고 고른 헌법재판관 적임자가 유정 버핏에 이어 미선 로저스다. 적폐의 잔당들에게 도덕성을 질타받는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청문회가 끝나자 자신이 보유 중인 주식을 처분하며 자진 사퇴 여론을 돌려보려 애쓰는 모습은 이를 시사한다.

이 후보자의 남편과 청와대는 ‘미선 로저스’ 구하기에 팔 걷고 나섰다. 변호사인 남편은 언론매체나 페이스북을 통해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다’ ‘주식을 팔거나 사는 과정에 불법이나 위법은 없었다’ ‘아내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보유 주식을 다 처분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 부부의 불법 주식투자 의혹을 제기한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는 맞짱토론까지 제의했다. ‘잘못한 게 전혀 없다. 그러니 아내인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조급증이 읽힌다. 주식시장에서 수십억원을 굴리면서 ‘나도 손해를 본 개미투자자’라고 언급한 건 적절치 않다. 수많은 ‘개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물어보나마나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남편의 발언을 SNS상에 퍼옮기며 힘을 보태고 있다. 법적 문제, 자질 문제, 이해충돌 여부를 봐도 특별히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 후보자 가족과 청와대 민정라인의 끈끈한 관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여하튼 여론 및 상식과는 매우 동떨어진 인식이다.

이쯤에서 이 후보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자신이 정말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보는지, 자신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면 헌재에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동료 선후배 판사들에게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이 후보자가 자문해 한 가지라도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물러나는 게 옳다. 그리고 이미 과거의 일이 돼버렸지만, 헌법재판관 제의가 왔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돈, 명예, 권력을 다 가지려는 건 과욕이다. 이 후보자의 남편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뒤늦게 여기저기에 아내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호소하거나 엉뚱한 제안으로 사태를 키우지 말고 왜 이런 논란이 벌어지게 됐는지를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게 먼저다.

청와대는 뻗댈 때가 아니다. 검증 실패라는 지적이 훨씬 많은데, 실패가 아니라고 맞서 뭘 어쩌자는 건가. 3·8 개각 파동에 이은 ‘이미선 사태’는, 집권 초기 참신하다고 호평 받던 현 정부 인사가 2년도 안 돼 완전히 망가졌다는 징표다. 이 후보자를 포기하고, 인사 부실의 책임을 물어 조국·조현옥 라인을 교체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한국당은 이 후보자 부부를 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면, 헌법재판관이 주식 문제로 검찰에 출두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짖을 테면 짖어라. 우리는 간다’는 식의 오만함을 이번엔 보고 싶지 않다. 청와대에 득될 것도 없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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