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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4월은 잔인한 달?



4월 하면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球根)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대학 시절 조교수 앞에서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하며 외워 읊조린 기억이 생생하다. 교수님이 내준 과제였다. 학점을 따기 위해 433행에 달하는 이 장문의 시를 외우느라 며칠 동안 애를 먹었다. 오죽했으면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이 시가 ‘잔인한 시’라고까지 불렸을까.

그럼 시인은 왜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을까. 1922년 공개된 이 시 곳곳에는 종교적 신앙을, 생식의 기쁨을 잃고 썩어서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 서구 문명의 비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른 당시 현실을 부활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황폐하다고 본 것이다. 엘리엇이 이 시의 제사(題詞)에서 무녀의 입을 빌려 “죽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엘리엇 자신은 훗날 “황무지는 시대에 대한 비판의 산물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시”라고 한발 물러섰다.

4월은 우리에게도 잔인한 달로 기억된다. 유독 이달에 수많은 상실을 경험한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이 시는 4월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가 되다시피 했다. 71년 전 4월에는 ‘제주 4·3 사건’이 있었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수는 지난달 현재 1만4363명이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일 뿐이다.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인명피해를 2만5000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량이 희생된 것이다. 1960년 4월에는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이 있었다. 2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수장된 세월호의 아픔도 4월에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전복되면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등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제의 모진 탄압을 뚫고 1919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국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97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늘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100주년 기념식이 엄숙하게 진행된다.

2019년 4월은 한반도 전체가 잔인한 달로 기록될 듯하다. 식목일을 앞둔 4일 강원도 고성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강원도 산불 피해면적은 고성·속초 700㏊, 강릉·동해 714.8㏊, 인제 342.2㏊ 등이다. 축구장 2460개 면적의 산림에 해당하는 총 1757㏊가 잿더미로 변했다. 한밤중에 집과 병원, 공장, 학교, 군부대까지 덮친 화마(火魔)로 수천명이 긴급 대피했다. 전기와 도로, 철도가 통제되고 통신까지 마비된 아수라장 속에서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급기야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 등 5개 시·군은 6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하지만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싹은 텄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데 불을 댕겼고, 세월호의 비극은 어른들의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를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번 역대급 강원도 산불에서도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25㎏에 달하는 장비에도 1㎞의 화염을 뚫고 요양원에 진입한 소방대원,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운 수많은 시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지킨 공무원 등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밤늦은 시간 민가를 덮친 대형 산불에도 인명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숨은 영웅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불 종료 이후 확인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이 각계각층에서 이어지고 있다. 모금된 액수만도 며칠 사이 15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온 국민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그대로가 ‘희망’이 아닐까 싶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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