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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300명을 구하지 못하는 나라



우리나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7000개라는 말도 있고, 3만개라는 말도 있다. 대통령 인사권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느냐, 넓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검사 수는 2000명 정도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다. 나머지 검사 인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사실상 위임된 상태다. 인사혁신처가 발행한 ‘국가 주요직위 명부록’을 보면, 행정부 47개 기관의 본부 서기관급 이상 직위 인사는 7800여명이다. 넓게 해석하면 이들 모두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인데, 대부분 장관이나 해당 기관의 장에게 인사권이 위임돼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말 중요한 자리는 300개 정도다. 행정부를 보면, 국무총리 1명, 장관 18명, 법제처장 등 5개 처장과 국세청장 등 17개 청장이 있고, 국정원장과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있다. 모두 합치면 50명쯤 된다. 대통령의 손발인 청와대 수석급 인사도 핵심 자리다. 모두 15자리인데,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과 수석·보좌관·차장 12명이다. 여기에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등을 합치고, 정부 차관급 인사, 공공기관장과 임원을 합치면 300명쯤 된다고 한다. 대통령은 이 300명과 함께 5년간 국가를 운영한다. 국민은 300명의 면면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이 나라가 잘 운영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런데 이 300명을 구하는 게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대한민국 인구가 얼마인데 300명을 못 구하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지도 모른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늘 “사람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심 끝에 인사를 해도 늘 문제가 터졌다. 대개는 부동산에 발목이 잡혔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자녀가 문제가 됐다. 한때 논문 표절도 단골손님이었고 여러 가지 소소한 특혜도 크게 문제가 됐다. 과거에 했던 발언과 글이 문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능력이 있으면 코드가 안 맞고, 코드가 맞으면 능력이 없었다. 코드와 능력이 맞으면, 40년 전 몰래 혼인신고가 갑자기 터지는 식이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라디오방송에서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이 젊은 시절에는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에 둔감했다. 통상화돼 있는 사회 분위기였다”고 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사람을 걸러내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 민정과 인사 쪽 이야기”라는 말도 했다. 인재가 없다는 얘기는, 국민의 엄격한 잣대로 보면 우리 사회 지도층 대부분이 과거의 편법과 특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에 장관이나 기관장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찾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1~3급 고위공무원단이 1500명이고, 4년제 대학교수만 6만8000명(2018년 기준)이다. 변호사는 2만4000명(2017년 기준)이고, 30대기업 임원은 3400명이다. 국회의원이 300명이고 전직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을 합치면 2000명 정도는 된다. 비영리민간단체 숫자도 1600개에 달한다. 재야에 묻힌 은거고수들까지 합치면 인재풀이 10만명은 된다. 그럼에도 부동산 ‘투자’에 신경 쓰지 않았고, 특혜를 누리지 않았으며, 적당한 재산과 평범한 자녀가 있는 ‘유능한’ 300명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넘쳐 난다. 문재인정부도 과거 정부들처럼 ‘찾지 못하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하다. 정말 그렇게 인재가 없는 것일까. 혹시 찾지 못했다면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없는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는 것은 아닐까. 인사의 내밀한 속사정을 전부 알기는 어렵지만, “없다”는 하소연보다는 “이렇게까지 찾아봤다”는 발굴담을 듣고 싶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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