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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이게 정상이거늘…



소방청 대응이 빛난 건 전문가들이 독립적 판단 후 즉시 대처하게끔 제도를 바꾼 덕택
정치권력·정치인의 선의·지침에만 기대서는 모든 게 난망…
법과 제도를 냉정히 개선해야 비정상과 부조리가 고쳐진다


재난은 닥쳤지만 대응은 침착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지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강릉 고성 동해 속초 인제 등 축구장 면적 742배 이상 넓게 퍼진 강원 산불은 거대했다. 캘리포니아 산불이 엄청나다지만 거기와 여기를 평면 비교하는 건 무리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산림 규모가 다르고 대부분 인적 드문 지역에서 발생하지만, 강원도는 동네가 산이고 산이 동네인 곳이 많다. 이번 산불은 특히 그랬다. 불이 마을 길을 지나가던 버스를 공격하고, 주유소와 학교를 습격했으며, 수많은 안방까지 집어삼켰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의 역대급 산불 규모였지만, 그에 비해 인명피해가 적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전국에서 밤새워 달려온 소방차들, 달랑 소방 호스 하나로 학교를 지킨 교직원들, 평소 재난 훈련받은 대로 침착하게 아이들을 유도해 안전하게 대피시킨 교사와 안전 요원들, 폭발 위험에도 주유소와 LPG 충전소를 지킨 소방관들, 화마가 다가오자 밤새워 재판기록물·폭발물 등을 안전 장소로 긴급히 옮긴 법원·민간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상식적 판단으로 해야 할 일을 했던 사람들…. 이런 이들의 헌신적인 행위가 더 큰 재난을 막았다. 작은 영웅들이다.

소방청의 대응은 빨랐다. 소방관은 화재를 예방·진압하고 화재·재난·재해·위급 상황에서 구조·구급 활동을 통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발생(4일 밤 7시17분) 이후 강풍을 타고 급속히 산불이 퍼지자 밤 9시44분에 대응수준을 3단계로 올렸다. 시·도 경계를 넘어선 전국적 수준의 대응태세다. 재난전문가 집단이 현장 상황과 강풍 등 여러 조건을 감안, 예측·판단해 신속 대응한 것이다. 위기대응기관인 소방청이 독립청으로 격상됐기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청와대에 보고하고, 행안부의 지침을 받고,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라고 상급기관에 물어보는, 어딘지 눈에 익은 대처방식과는 달랐다. 이게 정상이다. 위기 시 전문가들이 판단해 즉시 조치하고 이후 대처는 상급·유관기관의 도움을 받아 이어가면 된다. 구난 행위의 난이도나 육지과 해상의 차이 등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는 세월호와 이후 각종 대형사건에서 이런 정상적인 대응 체제를 그다지 보지 못했다.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익숙한 게 있었다. 바로 정치. 재난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안보실장은 그 시각 국회 운영위에 앉아 있었다. 9시33분 민주당이 처음으로 정의용 안보실장을 돌려보내자고 요청했고, 11분 뒤 전국적 대응수준인 3단계 격상에 몇 차례 더 요청했지만 자유한국당은 그를 붙잡고 보내주지 않았다. 속초가 지역구인 운영위 소속 한국당 의원은 8시쯤 이미 지역구로 향했다. 정 실장이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도착한 건 결국 밤 11시쯤이다. 다음 날부터 벌어진 여야의 공격과 변명, 재반박은 국민 처지에서 보면 참으로 복장 터질 일이다. 제복과 민간인들이 현장에서 제 할 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정치는 여전히 비정상이고 입으로만 떠든다. 차라리 현장에서 방해 말고 무슨 말을 하든 여의도에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비아냥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현장에서 위험 무릅쓰고 제 할 일 하는 것과 여의도에서 어이없는 꼬투리잡기 식 말싸움 하기, 뚜렷이 대비되는 두 장면은 우리 사회·정치의 부조리한 단면이다. 국가재난에 대응이 빛난 건 2017년 정부조직법이 바뀌어 소방청이 독립성을 갖는 외청으로 분리된 게 큰 요인이다. 소방청장은 국가 차원의 소방활동이 필요할 경우 각 시·도지사에게 즉시 소방력 동원을 요청할 수 있다. 펜대 쥐고 보고받은 사람들이 위에 잔뜩 있는 구조라면, 정치 권력이 전문가 판단에 개입하는 구조라면, 빠른 대처가 가능했을까.

이런 걸 개선하는 방법은 결국 법과 제도의 개선이다. 정치 또는 정치인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정치의 본성 자체는 상당히 대중영합주의적이고 정파적이다. 민주주의를 하는 비용이긴 하다. 하지만 안전과 생명, 권리를 지키고 개선하는데 정치 또는 정치인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모든 게 난망하다. 선의보다는 법과 제도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법과 제도가 개선되면 이렇듯 현장에서 올바르게 효율적으로 작동된다. 선의에 기대기엔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사람을 못 믿는다기보다 상황이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기 때문에 불신이 생기고 오작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선거법이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든, 검경 수사권 조정이든, 각 분야의 부조리든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적폐청산은 목적이 아니라 제도개선으로 가는 과정 또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면 김학의든 버닝썬이든 황하나든 황당한 사건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야 정상으로 돌아간다. 강원 산불 대처, 이게 정상이거늘…. 정상 매뉴얼대로 해도 칭찬받는 시절임을 우리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작은 영웅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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