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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이도경] 역대 최악 학업성취도… 교육감은 태평한 까닭



학생 한 명에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는데 학생들의 학력은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이 지난달 12일(사교육비 조사)과 28일(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받아든 성적표다. 부모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비를 꺾어놓지도, 공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그동안 교육부와 시·도교육감들은 무엇을 했는지 학부모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조사 결과 나온 수치를 두고 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을까 궁리하느라 분주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경우 넉 달이나 발표를 미루고 머리를 싸맸다. 원인 분석은 뒷전이었다. 학력이 떨어진 이유를 평가 방식 탓으로 얼버무리며 똑 부러진 답변을 내놓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학부모 표를 받아 당선된 시·도교육감들은 어땠을까. ‘내 일 아니다’ ‘관심 없다’가 이들의 주된 반응이다.

교육감들의 성적표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 평가 결과가 교육감 성적표인지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정부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교육과정이란 걸 만든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담은 국가 교육의 설계도다. 설계도 안에는 학년별로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 기준이 설정돼 있다. 그 기준에 도달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고용된 사람이 교사다. 일선 학교와 교사가 업무를 잘 수행하도록 지도하고 감독하라고 주민들이 교육감을 뽑아 놨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아이들이 교육 설계도를 따라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 필요한 역량을 잘 키우고 있는지 체크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된다.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면 교육감도 ‘낙제점’이다. 유권자인 학부모에게 감추지 말아야 할 성적표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교육부는 이 평가의 시·도별 데이터를 비공개하기로 했다. 교육감들과 교원단체 등쌀에 못이긴 탓이다. 2017년 6월 공식 발표 문서에 ‘교육감 의견을 수용했다’고 명시했으니 ‘공범’으로 봐야 정확할 것이다. 그 결과 2016년 11월 발표된 2016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발표 이후 어떤 시·도가 잘 가르쳐 보통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지, 잘 못 가르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높은지 알 수 없게 됐다.

교육 당국과 교원단체들은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를 비공개 명분으로 내민다. 나아가 앞으로 평가조차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경쟁은 학생 몫이 아니다. 이미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에서 옆에 앉은 친구와, 대입에서 전국의 또래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가벼운 모의평가일 뿐이다. 교육감들은 학생을 방패삼아 시·도별 데이터 공개를 막고는 결과가 나오자 교육부 뒤로 숨어 팔짱을 끼었다. 2015, 2016년 연속 꼴찌였던 서울시교육청은 학업성취도 평가 발표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다.

교육감들은 최근 수능 성적도 비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지난 1월 17일 정기총회에서 공식 안건으로 통과시켰다. 성취도평가 비공개 때와 이유는 비슷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별 수능 성적이 나오는 데이터가 국회 교육위원회를 거쳐 공개됐다. 이 자료도 공개하지 않더니 이제는 시·도 비교조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치며 매순간 업그레이드하는 사교육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달려가는 게 이상한 일인가.

사교육 통계는 어떤가. 시·도별 데이터는 나온다. 서울이 가장 높다는 ‘멍텅구리 데이터’다. 시·군·구별 데이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서울 강남권과 전국의 사교육특구들 그리고 여타 소외지역의 격차를 모른다. 교육감들은 개의치 않는다. 어느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으로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지역별 학력 격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 교육 슬로건이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아니던가. 아이들의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진단하려 하지 않고 아는 진단 결과마저 이리저리 감추려는 의사에게 올바른 처방을 기대하긴 어렵다. 교육감들은 입만 열면 교육 자치를 이유로 돈과 권한을 요구하면서 언제까지 교육부 뒤에 숨어 있을 참인가. 생색나는 자리나 찾아다니며 ‘정치’하라고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게 아니다.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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