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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지호일] 정치권력은 공수처에 자유를 허할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악의 축’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비대한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중수부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통된 공약이 중수부 폐지였고, 그렇게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4월 중수부 간판은 내려졌다.

그 이듬해 권력형 비리 근절과 수사 공정성 확보의 기치 아래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가 동시에 도입됐다. 그러나 상설특검은 법으로는 있으되 현실에서는 출현하지 않은 애초부터 유령 같은 존재였고, 특별감찰관제는 초대 이석수 감찰관이 청와대를 겨눴다가 되치기를 당해 속수무책으로 공중분해됐다. 그 후 2년 반이 지나도록 버려진 조직으로 방치돼 있다.

검찰 개혁은 법과 제도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검찰 개혁의 역사는 검찰 손아귀의 힘을 빼려는 시도들의 연혁이지만, 동시에 정치권력의 자기장으로부터 검찰을 분리해내지 않는 한 부질없는 일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검찰이 누리는 힘의 태반은 정치권력이 공급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이 천덕꾸러기가 된 데는, 박근혜정부의 유산이라는 측면과 함께 뒤에 와야 할 공수처의 자리를 비워두기 위한 성격이 짙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염원이기도 하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공수처 설치 불발….”(‘문재인의 운명’)

20년 이상 추진과 실패를 반복한 공수처 도입 문제는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낸 분위기다. 그런데 공수처가 정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처럼 검찰이 지배하는 광야에서 정의를 목 놓아 부를 수 있을까.

현실을 보자. 검찰은 현 정부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칼을 휘두르고 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단죄했으며, 헌정 사상 단 한 번도 침범을 허용하지 않았던 철옹성 사법부의 심장까지 도달해 전직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한 것도 지금의 검찰이다. 청와대는 검찰을 적폐로 지목하면서, 또 검찰을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 싸움의 선봉대로 활용했다. 국민 세금을 받는 검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해도, 검찰 수사가 현 정부를 떠받치는 유용한 무기가 됐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검찰을 놓아줄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이후 첫 일성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를 지시했다. “정의 실현”이란 명분도 하사했다. 법무부 장관이 이를 복명복창한 것을 신호로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수사는 한동안 국정 운영의 또 다른 동력이 될 터다.

그러고 보면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기무사 계엄령 문건 사건 등도 이와 전개 양상이 유사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한 선(先)공분 조성’→‘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검찰의 수행’이라는.

과거 정권 때처럼 청와대와 검찰 간 핫라인을 통한 은밀하고도 직접적인 하명은 아닐지라도, 정치권력이 필요에 따라 검찰권을 작동시킨다는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정(司正) 방식이라 해야 할까.

공수처는 검찰을 대신해 고위공직자 수사·기소를 전담토록 설계돼 있다. 숙명적으로 정치적 공방의 잔해를 청소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정쟁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공수처장을 포함해 최대 25명의 검사들로 꾸려질 이 독립부대는 과연 세찬 정치 바람에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발휘할까.

여당이 발의한 법안에는 국회에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설치, 임기 3년의 공수처장 중임 금지, 불기소 심사위원회 규정 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의 장치이지 공수처의 독립성·중립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공수처장 임명권은 결국 정치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게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여권은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보듯 자기편을 향한 수사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공수처를 ‘20년 집권 플랜’을 위한 퍼즐 조각으로 여기는 기색도 있다. 정치권력은 진보든, 보수든, 검찰권을 언제나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공수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식으로 설파하는 것은 환상 심기에 불과하다.

지호일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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