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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남중] 애 낳고 싶다는 사람들



“여기 39살의 결혼 9년차 난임부부가 있습니다. 결혼 후 임신을 잠깐 뒤로 미루고 2~3년간 열심히 맞벌이로 작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룹니다. 이제 아기만 생기면 행복할 것 같았던 이 부부에게 난임 진단이 내려지고 2년간 쉬지 않고 시술을 이어갑니다. 어느새 정부 지원은 다 소진되고 이제부터는 100% 자비로 시술을 이어가야 합니다. 시술을 받는 동안 혹시 임신이 안 되는 것이 직장스트레스 때문인가 싶어 잠깐 휴직을 했지만 휴직 1년 안에 임신에 성공을 못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국가 지원 없이 시술을 받을 경우 한 번 시술에 들어가는 비용은 400만∼500만원. 결국 맞벌이로도 경제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시술을 쉽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는 몸은 더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며 임신을 원하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금융권의 빚을 지며 시술을 다시 시작합니다. 난임여성의 아기를 갖기 위한 전쟁은 이렇게 처절하게 진행됩니다.”

지난 26일 오후 7시 서울시 중구 사랑의열매회관 지하 대강당. 무대에 선 김나영(가명)씨는 반은 울먹이면서 간신히 발표를 마쳤다. 그녀가 얘기를 하는 동안 청중도 함께 훌쩍거렸고, 옆에서 옆으로 휴지가 전해졌다. 이날 서울시 주최로 열린 ‘민주주의서울-시민토론’의 주제는 ‘난임’이었다. 마이크가 객석으로 넘어갔다.

“시술비 때문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갔습니다. 집도 전세에서 월세로 옮겼고요. 시험관시술만 12번째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이가 필요합니다. 저희 제발 책임져 주세요.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시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이크를 달라고 하고는 첫 마디부터 울먹이는 사람들.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이어갈 때마다 박수와 함성으로 격려하는 사람들. 100명 가까운 청중 대부분은 30∼40대 여성들로 보였다. 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행사장에는 ‘일반인 촬영 금지’ 안내문도 붙었다. 한 참석자는 “얼굴이 노출될까봐 마스크를 썼다”며 “난임 사실을 주변이나 시댁에조차 알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얘기했다.

초저출산 시대에 애 낳고 싶다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서, 회사도 그만두고, 노후대책도 포기한 채,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어서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들, 하루라도 빨리 애를 낳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온 여성은 “인공수정 네 번 실패하고 5년 만에 시험관으로 첫 애를 낳았다. 둘째 셋째도 시험관으로 낳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애를 낳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많은데…, 애 하나 낳겠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나라가 왜 안 도와주나요?”

1시간 넘게 이어진 이야기가 끝난 후 마이크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돌아왔다. 박 시장은 “이렇게 절박하고 고통스런 삶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저출산 걱정하는 나라에서…, 출생률 고민하는 정부에서…, 인구소멸 위기인 사회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돕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난임인들이 요구한 대로 보건소에서 난임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고 시립의료원에 공공난임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를 낳게 도와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 이들을 보면서 그 무수한 저출산 대책, 그 요란한 인구소멸 경보는 무엇이었나 궁금해졌다. 난임인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가장 우선적이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이다.

국내 난임인 숫자는 남녀를 합쳐 22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2017년 전체 신생아 중 5.8%에 해당하는 2만854명이 난임시술을 통해 태어났다. 이 비율은 전체 난임인 숫자의 10%에도 못 미친다. 올해 저출산지원사업 예산 23조4000억원 중 난임지원 예산은 184억원에 불과하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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