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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전정희] 차 목사와 국물 없는 국수



“그거 있잖니.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는 국물 없는 국수….”

“짜장면 말이지 엄마.”

병색이 완연한 엄마가 파리한 얼굴로 수줍게 누나에게 말했다. 가난 때문에 두붓집에 민며느리로 들어간 누나가 집에 들러 적은 돈을 내놓자 엄마는 국물 없는 국수를 시켰다. 엄마와 나는 정신 없이 먹었다. 누나는 배부르다며 먹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가 이 땅에서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성찬이었다.

6·25전쟁 직후 어머니의 죽음을 속절없이 체험해야 했던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의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다룬 이동하의 연작 소설 ‘장난감 도시’의 한 대목이다. 1980년대 초 발표된 이 소설은 소외된 사람들의 내면의 상처 치유를 다뤘다. 지독한 가난으로 가족해체를 겪은 소년은 국물 없는 국수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며 끄억끄억 속울음을 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유다의 때요 어둠의 시대”라고 했듯 사실상 성서 문학에 가까운 일반 문학이다. 교회의 기능과 목회자의 역할 그리고 구원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간구가 짜임새 있게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아쉽게도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안고 있는 성서적 주제 의식을 애써 외면한다.

소년의 가족은 사상 문제로 잠적한 삼촌 때문에 농촌공동체에서 뿌리 뽑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풀빵 장사 하던 아버지는 맨날 허탕만 치다가 고물 자전거를 사 짐꾼이 되는데 어느 날 밀수품을 날랐다는 이유로 징역살이를 한다. 병약했던 엄마는 더 몸이 악화하여 궤짝 같은 방에서 누워 지낸다. 그 판자촌에는 고물상, 피폭자, 달러장사꾼 등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이 모여 산다. 작가의 시선은 이런 이웃의 따뜻한 행동에 머물러 있다. 방문 진료를 주선한 아주머니, 장례까지 치러주고 소년에게 얼마의 돈을 쥐어주는 동네 최 반장 등 인물 하나하나가 ‘천사’다.

소년과 아이들은 전지분유를 타 먹기 위해 피난학교는 빼먹어도 유년주일학교는 빠지지 않는다. 소년은 그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발작하는 소녀가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랬어”라고 해맑게 말한다. 소년의 작은 마음이 소녀에게 기울어진다. 소년은 엄마에게 주려고 매번 전지분유를 먹지 않는다.

어머니가 국물 없는 국수를 맛있게 먹기 전날이었다. 어머니는 소년의 손에 의지해 빙판을 걸어 천막교회를 찾아가 처음으로 예배라는 걸 드렸다. ‘마룻바닥은 찼다. 턱이 떨렸다. 찬송가도 사도신경도 모르는 어머니는 길고 지겨운 예배를 놀랄 정도로 인내했다. 고통스러운 빛이 없었다.’

어머니를 인도한 건 차 목사였다. 궤짝 같은 방에 찾아왔던 차 목사는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소년은 그날 대화를 생생히 기억했다.

“목사님, 예수님만 지성으로 믿으면 애아버지가 돌아오고 남의 집 보낸 딸년도 돌아올까요?”

“그렇습니다. 예수께 열심히 기도하면 가족이 모여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병부터 고치셔야 합니다. 어떻게든 치료받을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날 차 목사는 보리쌀과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놓고 갔다.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였다. 톨스토이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은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읽는 작품이다.

지난주 자비량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사회주의 국가 A국의 농촌 마을이었다. ‘장난감 도시’와 다름없는 황량한 마을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 마을 외곽에 조심스럽게 내건 십자가가 있었다. 수백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은 시종 눈을 감고 울었다. 눈물만 뺨에 흘렀다.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주름진 얼굴의 노인들은 눈물도 말라 있었다. 그러한 선교지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는 삶에 찌든 어머니가 아기를 업은 채 눈물을 흘릴 때다. 인도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서 수많은 어머니의 눈물 기도를 보았다. 차 목사가 “삼신할미께 빌듯이 기도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백번 이해한다.

청계천 빈민의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1970년대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찍은 사진 한 장도 우리의 믿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배당 가마니 바닥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 등에는 포대기에 업힌 아이가 초점 없는 눈망울로 손가락을 빨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음에도 국물 없는 국수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마음을 베인 이들이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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