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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길이 열렸다… ‘모세의 기적’ 따라 걷는다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앞바다에서 의신면 모도로 이어지는 ‘신비의 바닷길’을 지난 22일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회동리와 모도에서 출발한 띠잇기가 만나는 절정의 순간 불꽃이 쏘아지면서 하늘과 바다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기다림의 공간인 팽목항 방파제.


진도타워에서 내려다본 진도대교와 울돌목.


전남 진도(珍島)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섬이다. 땅이 기름지다고 해서 옥주(沃州)라 불리기도 했고 ‘한해 농사 지어 삼년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보배 섬’의 면모를 갖추기도 했다. 진도대교를 건너 들어서면 섬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임에 틀림없다. 그 바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기적’도 일으키고 가슴 아픈 기억도 품고 있다.

매년 이맘때 진도 앞바다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보배로운 기적이 일어난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다. 썰물과 밀물의 조수 간만 차이로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바다 2.8㎞가 물 위에 떠 있는 도로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물때가 잘 맞으면 폭 40여m로 1시간 동안 갈라진다.

기적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매년 음력 12월 중순부터 3월 초 조석 간만의 차이가 큰 대사리 때만 벌어지는 진기한 광경이다. 수시로 바닷길이 열리는 다른 곳과 달리 한 해 열흘가량만 볼 수 있다.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작은 전설을 품고 있다. 회동마을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주민들이 모두 모도로 피신하고 뽕할머니 혼자 마을에 남겨졌다. 가족을 몹시 보고 싶어 했던 뽕할머니가 간절히 빌고 또 빌자 바닷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다.

1975년 피에르 랑디 주한 프랑스 대사에 의해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세계에 알려졌다. 그는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했다. 덕분에 마을 주민끼리 치르던 연례행사는 1978년부터 성대한 축제로 거듭났다. 1978년 일본 NHK가 ‘세계 10대 기적’ 중 하나로 소개하고 1996년에는 일본 인기가수 덴도 요시미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 한 ‘진도이야기’(珍島物語) 노래를 부른 뒤 일본인 관광객도 급증했다. 6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최우수로 축제의 명성을 날리고 있다.

올해 41회째로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신비의 바닷길’ 걷기다. 바닷길이 드러나는 시간 동안 흥겨운 풍악에 맞춰 걷다가 개펄에 드러난 조개·낙지·소라·전복을 줍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이 길을 걷기 위해 올해도 외국 관광객 3만여명 등 모두 53만여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바닷길 입구에는 2000년 4월 제작된 뽕할머니 상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곳이 신비의 바닷길 체험 출발점이다.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대편 모도쪽이 멀리서 봐도 더 뚜렷했다. 뱀처럼 휘어진 길이 회동리쪽으로 점점 다가온다. 때를 맞춰 긴 장화를 신은 체험객들이 순례 행렬처럼 길게 줄지어 바다로 나선다. 성급한 이들은 길이 드러나기도 전에 안내요원을 따라 물길을 걷는다. 물이 빠진 바다는 천연 놀이터나 다름없다.

회동리쪽에서 파란색 천이 모도쪽으로, 반대쪽에서는 빨간색 천이 길을 따라 오간다. 중간쯤에서 만나자 불꽃이 쏘아져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다시 물이 차며 닫히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아쉬운 듯 되돌아 나온다. 올해는 바다 갈라짐 현상이 예년만 못하다. 해수면이 예년보다 높아 바닷길이 완전히 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걷는 열정은 막지 못했다.

진도에 들어서면 애잔한 마음이 앞선다.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못해서다. 그 중심에 팽목항(진도항)이 있다. ‘통곡과 기다림’의 공간이다. 유가족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이들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곳. 노란 리본 조형물 바로 옆 ‘기다림의 의자’가 대변해주는 듯하다.

노란 리본, 빨간 등대는 이곳을 처음 찾은 이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방파제 입구부터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등대까지 100m가량의 길에 수많은 슬픈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색이 바래고 낡아 찢어진 노란 리본이 난간에 매달린 채 거친 바람에 나부낀다. 전국 어린이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쓴 4656장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 등 곳곳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가득하다.

▒ 여행메모
용장성·진도개테마파크… 볼거리 다양
팽목항 새 이름 진도항 ‘기억의 장소’


전남 진도는 한반도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수도권에서 가려면 목포와 해남을 지난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에서 빠져 영산호 하굿둑과 영암방조제, 금호방조제를 지나 77번 국도로 갈아타고 해남 우수영을 지나 진도대교를 건너면 닿는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버스가 하루 4차례 운행한다. 약 5시간 소요된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차례 오간다. 약 5시간40분 걸린다.

진도대교를 건너면 왼쪽 망금산 정상에 전망대를 비롯해 진도군홍보관, 역사관 등의 전시공간을 갖춘 7층 규모의 진도타워가 있다. 이곳에 서면 울돌목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시계방향으로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 용장성, 진도개테마파크, 운림산방, 신비의 바닷길 순으로 도는 동선이 효율적이다.

진도읍에서 18번 국도를 타면 임회면을 지나 진도항에 닿는다. 팽목항의 새 이름이다. 세월호 사고 1년 전부터 항구 매립작업을 거쳐 진도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곳에서 관매도, 조도 등으로 가는 배편을 이용할 수 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임회면 소산(154m) 기슭에 국립 진도자연휴양림이 있다. 거북선과 판옥선을 본떠 만든 숙박시설은 모든 객실에서 바다 전망을 누릴 수 있다. 1박 5만원부터. 남도진성, 도리산전망대, 장전미술관 등도 볼거리다.

진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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