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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의구]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민 앞에 다시 등장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회고록에 썼다가 피소돼 법정에 출두하는 날이었다. 1995년 12월 내란 혐의를 조사하던 검찰의 소환 예정일에 집을 나서면서 ‘골목 성명’을 발표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데자뷔를 느꼈을 것이다. 이번엔 성명 발표 없이 승용차에 올랐지만 법정에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24년 전 재판 과정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하던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 6일에는 17대 대통령이 이목을 끌었다. 다스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건부 보석으로 석방됐다. 구속 349일 만에 출소한 그는 침묵을 지켰으나 차창을 열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근황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소회와 평가는 저마다 달랐을 터이다. 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고집스러운 일관성에 존경을 표했을 수 있겠지만, 반대자들은 치를 떨었을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번 재판이 ‘정치적 보복’이라며 석방을 당연시 여긴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보석신청 때와 사뭇 다른 그의 건강상태에 눈살을 찌푸렸을 듯하다.

두 사람을 놓고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순탄치 않은 말년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것이다. 정치 역정이 다르고 집권 과정과 정치적 공과가 같지 않은 두 경우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도한 추상화이고, 현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라 평가하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며 역대 대통령들의 몰락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상 초대 이승만부터 18대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11명의 전직들 가운데 임기를 제대로 채운 것은 6명에 불과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해 미국 땅에서 세상을 떴다. 4대 윤보선은 5·16 이듬해 사임했다. 10대 최규하 전 대통령도 12·12로 실권을 잃고 8개월 만에 물러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천수조차 누리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해 5명은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자금과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시비에 휘말렸다. 전직 대통령 중 2명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기각되기까지 63일간 직무가 정지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다.

대통령중심제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수난은 있었다. 16대 링컨과 20대 가필드, 25대 매킨리, 35대 케네디는 총격으로 숨졌다. 3명은 질병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초대 워싱턴부터 44대 오바마까지 230년 동안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은 한 명도 없다. 17대 앤드루 존슨과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부결돼 임기를 마쳤다. 37대 리처드 닉슨은 상원의 탄핵안 표결 전 사임했다.

대통령들이 수난당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와 그 측근들에게 있다. 재임 중 저지른 중대한 불법은 규명되고 책임이 지워져야 마땅하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도덕성을 단련하고 국정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잦은 수난에는 굴곡진 헌정사가 투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긴 일제 치하를 거쳤고, 분단과 동족상잔, 쿠데타로 인한 헌정 중단도 두 차례나 겪었다.

미성숙한 정치 제도와 문화도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정치자금의 유혹이 상존하고, 선거시스템은 최고의 지도자를 뽑기에 아직 미비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흘러나오는 불복 논리는 정치세력들에게 매우 편리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된다. 국정 꼭짓점이 필요 이상으로 흔들린 해악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무엇보다 선거의 룰이 지켜져야 하고 그 결과 나타난 여론의 총합은 존중받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전직이건 현직이건 대통령을 함부로 재단하는 게 능사가 돼서는 안 된다. 이념이란 침대에 올려놓고 공(功)만 치켜세우거나 과(過)만 강조하는 식으로 몸을 늘리거나 자르면 안 된다. 대통령들의 공과는 있는 그대로 매우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고 온전한 전체로 평가해야 한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존경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생기려면 이런 숱한 과제들을 넘어가야 한다.

김의구 제작국장 겸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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