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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이승우] 꿈꾸기의 안쓰러움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참 안쓰러운 것 같아.” 이 말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습작을 하고 있는 30대의 습작생에게 동생이 했다는 말이다. 이 습작생은 소설을 쓰고 싶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문예창작 대학원에 들어갔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습작을 하고 있다. 자기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지만 전공을 살려 고만고만한 회사에 취직하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데 가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즐기며 사는 동생 눈에는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던 언니가 그 꿈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유보한 채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언니의 문제는 포기 못 한 ‘소설가 꿈’이었을 것이다.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자기와는 달리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언니’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꽤 있다. 나이든 습작생을 대하는 내 마음 한편에 이 동생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 없지 않다. 나는 그 꿈을 향해 매진하도록 독려해야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맡아 하지만 때때로 그 꿈과 현실 사이의 막막한 거리를 인식하면 심사가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불안정하게 유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은 가끔 습작생을 지도하는 선생인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고 꿈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꿈을 놓아버리라고 할 수도 없으니 난처하다.

유독 젊은이에게 꿈을 권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현재를 희생해서 얻게 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관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꿈에 붙들려 인생을 허비해버릴 수 없다는 이 생각을 나무라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꿈만 꾸고 있을 수가 없다고 젊은이들은 말한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달려 꿈꾸는 자를 소외시킨다. 피터 빅셀의 어떤 우화 속 발명가에 비유할 수 있을까. 긴 시간 자기 골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발명해서 나왔더니 세상 사람들이 이미 그 발명품을 다 가지고 누리고 있더라는. 현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밀려난다는 조급증이 꿈꾸기를 멀리하게 한다.

고착된 사회 구조가 워낙 튼튼해서 개인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절망 섞인 인식도 꿈꾸는 일을 어리석거나 안쓰러운 일로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기대를 하게 했던 사법시험 제도가 없어진 것은 꽤 시사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 짧기까지 하니 함부로 꿈을 꾸라고 권하기가 어렵다. 한 세기 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경구였던 ‘보이스 비 엠비셔스(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잡아라)’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그렇다고 꿈같은 것은 내버리고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그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즐기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 짧기까지 하다는 것은 꿈을 가지라고 충고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지만 꿈을 갖지 말라고 권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서 옥사한 것으로 알려진 신학자 본회퍼가 쓴 ‘옥중서신’을 읽다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는 친구이자 후배에게 보낸 편지에서 꿈을 갖는 일과 현재의 삶을 내버리는 일이 같지 않음을 강조한다.

“소원에 너무 집착하면, 그 소원이 우리에게서, 우리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앗아가기 쉽네.” 그는 소원에 매달리기만 할 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소원, 즉 꿈이 없는 상태는 결핍 상태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소원·꿈에만 매달려 현재의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내팽개치는 일의 무책임함도 나무란다. 심지어 현재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소원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는 말도 한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어도 완성된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그의 말은 소원·꿈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원·꿈 때문에 삶의 완성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주문은 따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따르기에 마땅한 조언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꿈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그 꿈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은 데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이것은 곧 꿈을 가지고, 동시에 현재에 충실하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와 ‘카르페 디엠’이 만나는 자리라고 할까.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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