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약속을 이루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평생을 쓴다는 말처럼, 어렸을 적부터 목표를 혼자서 간직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되고 싶었다. 간호사, 천문학자, 연출가, 카피라이터, 시인, 소설가, 정신과 의사 등 모든 꿈을 떠벌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마음속의 희미하고 작은 목표였어도, 일단 호언장담을 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게 되고, 약속으로 바뀌는 연금술을 경험한다. 처음에 국민일보에 ‘살며 사랑하며’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가 속한 독서모임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첫 넉 달의 기간을 한 번 이상 연장하도록 애쓸 것이며, 그만둘 때는 글쓰기와 독서에 있어서 늘 우리를 이끌어주는 선생님인 문화라 작가님을 추천하고 싶다고. 다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의미를 담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주요 일간지 연재는 영광이지만 스트레스도 많았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은 원래 힘든 게 맞다. 물론 보람이 따라온다면 참 좋겠지만, 즐거움부터 먼저 기대하며 일할 수는 없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온 환자가 계시다면 그 환자에게 치유의 순간을 선물해야지,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면 되겠는가. 그것은 옳지 않다. 다른 곳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일하다 느끼는 즐거움은 그저 감사해야 한다.

지키지 못한 약속도 많지만, 힘들 때마다 처음에 한 약속은 버티는 힘이 된다. 단, 약속은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선생님께 ‘국민일보 필진이 되게 해줄게요’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 내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감사하는 마음에 ‘국민일보가 대한민국 최고의 일간지가 될 것입니다’라는 약속도 할 수 없다. 독자로서 바람일 뿐 약속할 권한은 없다. 마지막 글을 쓰려니 갑자기 술술 써진다. 원래 헤어지려면 반갑고, 죽을 때쯤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더니. 나는 약속을 또 하나 이뤘으니 괜찮다. 단순히 내 마음속의 목표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약속이 된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은 혼자만의 목표겠지만 많이 나누고 기여하고 싶다는 것은 약속이 된다. 누구에게나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약속을 이루는 삶을 살고 싶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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