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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이용규와 베테랑의 품격



독일 출신의 덕 노비츠키(41·댈러스 매버릭스)는 미국프로농구(NBA)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통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그는 최근 NBA 선수 중 6번째로 3만 득점을 돌파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슈퍼스타의 경우 겉멋과 고집에 사로잡힐 법하지만 그는 달랐다. 1998년 NBA 데뷔 후 지금까지 21년간 몸담아 온 팀을 최우선시했다. 수년간 자신의 연봉을 줄이면서 팀이 재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올 시즌 팀과 후배들을 위해 벤치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어떤 스타도 팀보다 위일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LA 클리퍼스와 댈러스 간 경기 종료 9초 전. 홈팀 클리퍼스의 덕 리버스 감독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코트에 있던 노비츠키를 향해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 중 한 명”이라고 외쳤다. 마지막 클리퍼스 원정이 될지 모를 노비츠키에 대한 헌사였다. 품격 있는 노장에 대한 아름다운 예우에 원정 관중도 기립박수를 쳤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34)를 노비츠키와 직접 비교할 순 없다. 명성, 종목,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재능과 열정, 악바리 같은 승부 근성은 유사하다. 체력관리만 제대로 하면 훌륭한 베테랑이 될 여지가 이용규에게 충분했다. 하지만 이용규는 야구계의 존경을 얻을 기회를 제 발로 찼다.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까지 가서 훈련한 이용규는 정규시즌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다른 팀으로 이적을 요구했다. 스포츠 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납득하기 힘든 행위다. 결국 구단은 무기한 참가활동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자칫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충수도 이런 자충수가 없다.

정확한 이유에 대해 당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다. 타순, 수비 포지션, 베테랑 예우 등에 대한 불만이 거론되고 있지만 추측뿐이다. 다만 그동안의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구단의 젊은 선수 육성 분위기, 고참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데 대한 원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이용규만 겪는 상황이 아니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팀이 젊은 선수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야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팀 내 선배인 정근우(37)도 부동의 포지션인 2루에서 외야수로 자리를 옮기게 됐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겨우내 구슬땀을 흘렸다.

오히려 이용규의 치기 어린 행동은 스스로를 못 믿는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분명 그의 나이대는 선수로서 최정점을 지나긴 했지만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동갑내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는 녹슬지 않는 득점력으로 여전히 세계 최고 축구선수의 영예를 지키고 있다. 불혹의 축구 스타 이동국(전북 현대)은 34세 때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포를 가동해 왔다. 올 시즌을 마치고 코트를 떠나는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임영희(39)는 이용규 나이가 돼서야 전성기를 맛봤다. 그는 33~34세에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가 되며 여자농구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기시미 이치로는 저서 ‘미움받을 용기2’에서 “인간의 가치는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진다”고 했다. 이용규의 처신은 야구와 팬에 대한 자세를 부지불식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띠동갑 형뻘인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46)는 지난 21일 메이저리그 은퇴를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내가 달성한) 10년 연속 200안타나 MVP는 야구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떤 기록보다 야구에 대한 내 사랑과 자부심이 중요하다. 야구를 정말 사랑했다.”

이용규는 진정 야구를 사랑했나. 이에 대한 대답은 향후 그의 행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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