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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준엽] 디지털 편식의 민낯



유튜브 사용법을 알려달라던 친척 어르신은 이런 말을 했다. “유튜브에 정부 비판하는 영상만 있는 걸 보니 정부가 잘못하는 게 많은가 봐.” 사용자가 선호하는 영상을 파악해 유사한 걸 타임라인에 올려주는 유튜브의 콘텐츠 노출 방식을 몰라서 한 얘기다. TV 방송국이 방송을 내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계속 유튜브를 보면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면서 내가 믿고 싶은 걸 뒷받침해주는 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보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내용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라면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다. 이른바 ‘확증편향’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아마 그의 유튜브 타임라인에서는 현 정부 들어서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포털, SNS 등이 앞다퉈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업체들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사용자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해 보여준다는 걸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요즘 들어 단점이 더 부각돼 보이는 건 ‘디지털 편식’이 불러오는 문제점이 점점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단 거만 계속 주면 충치가 생기고 성인병 걸릴 위험도 커진다.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하게 자라듯, 정보도 균형 있게 접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세상이 점점 파편화하고, 자신만 맞다고 주장하고 상대방 의견은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게 디지털 편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최근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에서 발생한 끔찍한 총격 사건은 SNS로 인해 충격이 더 컸다. 범인은 자신이 자주 드나드는 정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장문의 성명서를 올렸고, 범행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17분간 생중계했다. 범인이 올린 성명서를 보면 인터넷을 통해 극단적인 생각을 키워왔음을 엿볼 수 있다. 범인은 유럽 여행 도중 무슬림 난민들을 보면서 무슬림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교류하며 증오심이 점점 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은 자신을 “무슬림에 공격받는 서구사회를 지키는 군인”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이 왜곡된 정보를 유통하고, 범죄의 도구까지 될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규제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다. 정부의 개입을 용인하는 순간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일도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가짜 뉴스는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도 가짜 뉴스라고 지목하는 걸 보게 된다. 누가 뉴스의 팩트체크를 하고 가짜인지를 결정하냐는 것도 문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인터넷 업체들은 AI를 동원해 가짜 뉴스를 가려내려고 한다. 시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가짜 뉴스를 완벽하게 가려내기 어렵다.

뾰족한 방법이 없기에 디지털 편식을 끊는 건 사용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정보를 취하기보다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포털이나 SNS는 사용자의 취향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알고리즘을 바꾸게 된다. 좋아하는 정보 대신 필요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더 선호한다는 게 감지되면 인터넷 세상의 정보 유통 트렌드도 바뀔 수 있다.

내 얘기를 하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통 방식도 필요하다. 인터넷 댓글이 생긴 이후 사람 간에 대화가 급격히 줄었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댓글은 자기 할 말만 하면 그만이다. 타인을 이해할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인간의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더 많이 해야 하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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