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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조민영] 긍정적 나비효과



지난해 4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2013년)을 진상규명을 위한 본조사가 필요한 사건으로 선정했다. 당시 조사 대상이 된 사건 중 김 전 차관 사건이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 수사와 두 번의 검찰 수사를 거치고 무혐의가 된 사건이 5년 만에 다시 검찰의 과오를 바로잡는 과거사 조사 사건이 된 것을 바라보는 법조계 시각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당시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 여파로 높아진 성범죄 은폐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비꼬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 조사 대상이 아니었던 장자연 사건(2009년)도 그 즈음 조사 대상에 포함됐고,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시선을 받았다. 피해 당사자가 사망해 조사하기도 어렵고, 조사한다 해도 공소시효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회의론의 요지였다. 여론에 휩쓸린 결정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나왔다. 그래서인가. 정작 과거사 조사가 진행되고 또 그 진상조사단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며 지지부진하고 있던 동안 이 사건들을 굳이 기억해 관심 갖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른바 ‘버닝썬 사태’가 터졌다. 지난해 말 아이돌그룹 빅뱅 출신 가수 승리가 관여했던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 시비는 마약과 성폭력, 불법 촬영 의혹에 이어 경찰 유착 등이 총 망라된 스캔들이 됐다. 당시 폭행 사건을 세간에 알렸던 김상교씨 이름을 딴 ‘김상교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 사건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됐다. 특히 경찰 유착 정황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이어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애초 유리한 위치였던 경찰에 불리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수사권을 내주길 원치 않던 검찰에는 할 말이 생겼다. 마침 가수 정준영 카톡방에 대한 공익신고를 접수한 권익위원회도 사건을 검찰에 이첩해 권한을 줬다.

그리고 사흘 뒤인 지난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검찰 과거사위 사건을 언급했다. 김 전 차관 사건 당시 경찰은 입수한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임을 명확히 확인해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관심은 김 전 차관 사건으로도 옮겨붙었다. ‘장자연 사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두 사건은 검찰이 의혹의 시선을 받는 사건들이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 모두에게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명했다. 경찰은 현직 총경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당초 3월 말까지였던 과거사위 조사 기간을 더 연장할 수 없다던 법무부 태도가 바뀌었다. 김학의·장자연 두 사건에 두 달의 조사 시간과 더 많은 조사 인력이 투입됐다. 공소시효가 남지 않아 의미 없을 것이라던 재수사는 누가 할지의 문제만 남았을 뿐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국면마다, 사건마다 실제 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래도 확실한 건 불과 지난달 말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두 사건이 중심에 섰다는 결과다. 문 대통령의 진실규명 지시에 대해 국민 약 70%가 적절하다고 봤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수사권 조정을 놓고 갈등하는 검찰과 경찰이 서로를 겨냥하고 있는 덕분에 연예인과 경찰이 연루된 성범죄 사건(버닝썬)도, 검찰과 언론이 연루된 성범죄 사건(김학의·장자연)도 대충 덮일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 듯하다. 어느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온라인 세상의 의혹도, 정치적 목적(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이 있다는 정치권의 의혹제기도 당장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진상규명을 위해 각 사건이 시너지를 내고 있으니 버닝썬 김상교에서 시작된 ‘긍정적 나비효과’를 좀 더 기대해볼 수 있어 보인다. 걱정은 있다. 의도가 있는 수사가 그렇듯 두 권력기관의 경쟁이 자칫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무리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리한 수사는 또 다른 과거사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당연한 ‘법의 원칙을 넘어서선 안된다’는 점이다.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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