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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마강래] 지방 살리는 베이비부머들의 귀향



“불운과 행운을 함께 가졌던 세대, 쓸쓸하고 찬란하다.” 장석주 시인은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이란 산문집에서 올해 나이 56∼64세인 베이비부머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15%(약 700만명)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는 군사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한 세대다.

혹자는 소비력이 높은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가 침체된 경제를 살릴 것이란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기도 한다. 이들의 자산이 다른 어느 세대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낙관이다.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부채감과 자녀들에게 부양 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있는 ‘낀세대’다. 아직 3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후 삶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자산 비중이 너무나 높아 은퇴 후 생활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실증연구는 베이비부머들이 자녀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데 따른 경제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노후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의 은퇴는 국내 소비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이비부머 상당수는 사회 초년병 시절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한 이들이다. 이들의 마음속엔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럼 베이비부머의 일부가 부동산을 매각(혹은 임대)하고 귀향한다면? 인구 소멸을 고민하고 있는 지방에 미치는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귀향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떠나온 고향에는 세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고령자들을 위한 의료시설이 적다. 간단한 통계를 보자. 서울, 경기도에 전국 의료기관의 47.1%가 밀집돼 있는 반면 부산, 대구, 경남은 각각 7.64%, 5.52%, 5.4%에 불과하다. 강원, 충북, 울산, 제주는 이보다 더 낮은 1∼3%대의 의료기관만이 존재한다.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수도 수도권 도시와 비수도권 도시들의 경우 배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베이비부머가 귀향을 망설이는 두 번째 이유는 부족한 문화여가시설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는 노인세대(65세 이상)에 비해 문화 활동에 대한 욕구가 크다. ‘국내외 관광 경험’ ‘평균 독서권수’ ‘레저·오락시설 이용 경험’ ‘문화 예술 및 스포츠 관람’ 등에서 노인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참여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 문화여가 인프라는 대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악하다. 설상가상으로 고향에는 옛 친구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들 또한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귀향이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고향에 은퇴 후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산업화를 주도한 세대의 자부심 때문일까. 베이비부머는 은퇴 후에도 또 다른 일을 지속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들이 희망하는 인생 이모작 대안은 거의 ‘농사 짓기’에 한정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65%정도가 농어촌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10% 넘는 인구가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도시적 삶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농사는 쉬운 게 아니다. 설사 귀농을 한다 해도 적응하지 못해 1∼2년 안에 포기하는 이도 많다.

베이비부머들에게 고향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앞으로 이들의 은퇴가 가속화될 것이다. 은퇴(retire)는 새로운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re-tire)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부는 이들이 고향에서 인생 이모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베이비부머세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귀향에 대한 욕구가 실현되도록 정책적 대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부동산 자산을 줄이기 위한 ‘귀향자 양도세 감면’이나 ‘기초연금의 지자체 부담 경감’ ‘지방 의료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정부 또한 베이비부머를 유인할 수 있도록 맞춤형 주택단지를 만들고, 문화여가 프로그램들을 정비할 뿐만 아니라 직업교육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의 귀향이 실버산업을 촉진하고, 이런 일자리를 좇는 젊은이들도 유입될 수 있도록 말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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