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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원재훈] 니체의 눈물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한 노새 한 마리가 시장통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부가 채찍질하자, 그 모습을 본 니체가 달려가 노새의 목을 껴안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인가 중얼거렸다고 한다. 마치 방언과 같아서 그 말의 뜻을 잘 알 수 없다는 것. 이 일화를 읽고 니체의 눈물을 영원회귀로 돌아가는 힘겨운 인생에 대한 눈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러한 해석은 무식한 자의 꽤 감상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해석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라고. 데카르트는 인간을 소유자이자 주인으로 인식하고, 동물을 자동인형,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동물이 신음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작동 상태가 나쁜 장치의 삐걱거림에 불과한 것이다. 동물의 신음을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실험실에서 산 채로 조각나는 개 때문에 눈물 흘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니체가 위대한 것은 ‘신은 죽었다’라는 철학적 구호보다도, 무거운 짐을 지고 걷다가 지쳐 빠진 노새 한 마리의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 것이고, 생명에 대한 위대한 각성이다. 이런 대각성이 니체를 철학자이면서 뛰어난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화문광장에서 철거되는 세월호 천막 옆에서 울고 있는 니체를 발견했다. 이순신 장군이 우두커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아낸 바다의 신인 이순신 장군은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바다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과연 그의 후예란 말인가.

이 천막들은 세월호 참사 3개월 뒤인 2014년 7월 유가족들이 풍찬노숙하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친 세 개의 텐트가 열네 개의 천막으로 늘어나면서 광화문의 풍경을 바꾸었다. 지난 사년 팔 개월 동안, 그곳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팽목항 바다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천막에 모신 304명의 영정사진이 유가족의 품으로 모셔지는 날에 시민들은 이곳을 방문하거나 지나치면서 어떤 슬픔의 무게를 안고들 갔다. 영정사진은 아직 모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서고로 임시 옮겨졌다. 아직도 안치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다. 유가족 중에 한 분은 이제 집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오자면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들, 딸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니체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은 것처럼, 우리는 그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의 목을 껴안고 누구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일까.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할 것인가.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를 비롯한 어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할 것인가. 유가족들은 다만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유가족의 찢어진 가슴을 어루만지며 다만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한 니체의 눈물은 차라리 그 대상이 정확하기에 개연성이 있지만, 세월호 천막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누구를 용서해 달라며 울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선지 그 자리가 더 슬프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 슬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에게 밀란 쿤데라는 또 이렇게 말한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천막이란 형식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어떤 내용을 채울 수 있을까. 그것은 참담한 죽음을 애도하고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는 슬픔이 없는 나라, 행복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어른들의 눈물이 용서가 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이 슬픔의 역사가 형식이라면, 그 안에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그 가능성을 니체의 눈물에서 찾는다.

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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