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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장지영] 남성들의 연대와 강간 문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9년 영화 ‘전쟁의 사상자들’은 베트남전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만들었다. 1969년 잡지 ‘뉴요커’의 기자 다니엘 랑이 쓴 미군들의 베트남 여성 윤간 사건 기사가 그 출발점이다. 1966년 11월 베트남 중부 산악지대에서 미군 5인 분대가 수색정찰에 나섰다. 해당 지역에서 베트콩을 찾는 게 임무였다. 이들은 첫날 작은 마을에서 20대의 젊은 여성을 골라낸 뒤 5일간 끌고 다니며 집단 강간한 뒤 살해했다. 정찰이 끝나면 이 여성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부대에는 베트콩을 사살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당시 미군 5명 가운데 단 한 명, 스벤 에릭슨 일병만 범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에릭슨이 강간을 거부하자 다른 군인들은 “동성애자” “겁쟁이”라며 그를 비웃었다.

에릭슨은 부대 복귀 후 자신이 목격한 범행을 상사와 동료들에게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왕따였다. 심지어 그를 노린 듯한 수류탄 폭발사고마저 발생했다. 전출을 강력히 요구해 다른 부대로 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군목을 만났다. 군목이 군 수사과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범행을 저질렀던 군인 네 명이 체포돼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네 명 가운데 분대 지휘자로 집단 강간을 주도한 병장이 가장 무거운 형을 받았는데, 1심에서 종신형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8년으로 감형됐다. 비록 감형을 받았지만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강간 범죄가 재판까지 받은 것은 이 사건을 포함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재판 내내 자신들에겐 잘못도 없다고 믿었고 나머지 한 명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한 명은 군 검사에게 동료들에게 비웃음받거나 왕따가 될까 봐 두려워서 범행에 동참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집단 강간이 남성들 사이의 연대와 유대를 강화하며 일종의 동료의식을 확인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미군들 가운데 동료들의 강간을 중단시키거나 외부에 보고하는 군인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양심이 남아있는 군인은 강간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줬다.

1975년 발표된 페미니즘의 고전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강간의 역사와 본질을 다룬 기념비적인 저서다.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는 강간이 그저 정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범죄이고, 강간 문화가 강고한 ‘남성 간 연대(male bonding)’에 의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시대가 바뀌고 법이 발전하면서 강간은 범죄가 됐지만 남성 권력이 주도하는 강간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을 비롯해 전쟁 중 벌어진 강간은 남성 간 연대의 폭력성이 정점에 달한 경우다.

하지만 아직도 강간은 남성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문화로 존재한다. 고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 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등은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남성 연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그리고 최근 불법 촬영물 유포와 성매매 등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승리와 정준영 등 남성 연예인들 역시 여성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드러난다. 세 사건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그런데 유대 강화라는 명목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도구화하는 게 일부 고위층이나 남성 연예인뿐일까. 당장 일반인 단톡방이나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는 자료를 돌려보다가 발각되는 사건 등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게다가 승리와 정준영에 대해 일부 남성들은 “젊었을 때 재미로 할 수 있는데, 재수 없이 걸렸다”는 반응을 보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권력관계로 왜곡되고 유해한 남성성이 아니라 인권과 성평등으로 무장한 새로운 남성성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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