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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윤철호] ‘로맨스는 별책부록’ 뒷얘기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배경은 출판사다. 드라마에서 편집장과 술잔을 기울이던 시인을 찾았을 때 그는 옥탑방에 죽어 있었다. 시인은 술자리에서 말한다. “내 시는 공짜야. 인터넷에 그냥 막 돌아다녀. 시집을 내면 뭐해 다음 날이면 그냥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시집이 팔리겠어?” 이건 드라마일까? 아니 실화다. 지난 2월 28일 한국작가회의와 대한출판문화협회, 우상호 의원실이 공동으로 마련한 저작권법 개정 논의 공청회에 참석한 시인 김사인(지금 그는 한국문학번역원장이다)도 개회사에서 똑같이 개탄했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시대에 출판물의 저작재산권은 보호되지 않는다. 유럽에는 스마트폰 등으로 쉽게 이뤄지는 사적 복제로 인한 출판물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사적복제보상금’ 제도가 도입됐다. 삼성도 유럽에서는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의 제작원가를 올리기 때문에 도입되지 않았다. 문화국가로 가자면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문화에 돈을 써야 한다.

며칠 전 회사로 전화가 왔다. “○○학교 학생인데요, ○○책 한 권만 보내주세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저희 학생들이 52명인데요. 그걸로 복사를 좀 하려고요.” “???” 이것도 실화다. 복사할 책을 그냥 보내 달라는 건데, 그게 저작재산권 침해라는 문제의식이 아예 없는 것이다. 대학가 신학기마다 극성을 부리는 불법복제 등으로 출판사의 저작권 침해 액수는 2017년 기준으로 5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서관을 지어놓고 도서 구입 예산은 배정하지 않으니 출판사에 증정을 요청하거나 도서관 한 곳에서 구입한 책을 나눠서 여러 도서관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궁리에 바쁘다.

시인의 시를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교재를 싸게 이용할 수 있으면, 도서관 한 곳에서 사서 함께 쓰면 좋은 것 아니냐고? 모두들 알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이야기를. 모이를 주면서 거위를 살려놓아야 황금알을 계속 얻을 수 있다. 시인에게 그리고 교재를 쓰는 필자들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되지 않으면, ‘모이’가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시도, 동화도, 좋은 교재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문화생태계가 파괴된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나오는 출판인들은 색과 두께, 질감을 따져가며 종이를 고르고, 좋은 디자이너를 찾기 위해 읍소를 하며, 몇 날 몇 달 때로는 몇 년 동안 원고를 다듬고, 밤새워 머리를 쥐어짜며 홍보카피를 뽑는다. 그러다 책이 나오면 “‘내 책’이 나왔다”며 뛸 듯이 기뻐하고 저자 사인회의 자리가 비어 사기가 저하될까 라면 팔던 부모님을 모셔 자리를 채운다. 이것 또한 실화다.

이쯤에서 열정 출판인 ‘강단이’와 ‘송혜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알아야 할 뒷이야기가 더 있다. ‘수업목적사용저작물 이용에 대한 보상금’이라는 것이 있다. 수업 목적의 저작물 복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 내에서 허용하면서 이에 대해 보상금을 내도록 한 제도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제도를 오해한 학생과 복사집이 마구 복제해서 책을 만들고 있는데, 불가피한 복제만을 허용하는 것이므로 책 제본은 불법이며 1년에 보상금이 학생 1인당 1100~1300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책 판매 감소로 인한 보상금의 수령권한이 저작자에게만 있고 “내 책이 나왔다”며 뛸 듯이 좋아했던 ‘강단이’와 ‘송혜린’에게는 보상받을 권한이 없다는 게 불합리한 현실이다. 그에 앞선 법에 따른 도서관의 저작물 복제에 대한 보상금은 저작권자와 출판권자들에게 공히 보상이 되도록 되어 있었으니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함에도 문화행정 책임자들은 바로잡지 않고 있다.

최 시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우리들의 강단이가 출판의 보람을 느끼고 오래오래 근무하게 하려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저작권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지난 2월 28일 저작권법 개정 공청회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실화다. ‘저작권법 개정은 별책부록?’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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