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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모든 것이 대통령 탓이더군요”



2009년 11월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한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한·미 FTA 등이 주요 의제였다. 오전 정상회담은 상춘재 오찬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오찬에서 “단독회담이 길어지는 바람에 확대회담을 못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책임입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맞습니다. 내 탓입니다. 미국에서도 모든 것이 내 탓이더군요”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책 ‘대통령의 시간’에 나오는 일화다. 모든 게 대통령 탓이라는 분위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모든 것이 대통령 탓일 수는 없다. 국가의 갈등은 매우 복잡하고, 독재국가나 전제국가가 아닌 이상 대통령의 권한은 한계가 명확하다. 장기적인 추세로 보면 대통령의 권한은 축소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야당이 격렬히 반대하면 대통령 임기 내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이자 가장 마지막에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두 달 뒤인 2010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TV 생중계로 자국민들에게 연설을 했다. 2009년 크리스마스에 벌어졌던 디트로이트 공항 테러 미수 사건과 관련한 연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저는 남 탓을 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최종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했다. 어찌 됐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최근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력 때문이라며 ‘문세먼지’(문재인+미세먼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고,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한 점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만 ‘문세먼지’는 과하다. “미세먼지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는 중국을 설득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차량 운행 금지, 기업 활동 제한과 같은 강력한 미세먼지 대책은 국민을 매우 불편하게 할 것이고, 국민들이 이를 인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다.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은 한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로마 시대 검투사’에 비유했다. 관중(국민)들은 높은 관중석에 앉아 검투사(대통령)가 제대로 칼을 휘두르고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관람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검투사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면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만, 검투사가 넘어지거나 실수하면 야유를 보낸다. 검투사와 관중이 분리된 로마 시대와는 달리 현대사회의 대통령과 국민은 분리될 수 없다.

좋은 국민이 좋은 대통령을 만든다. 문 대통령은 요즘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해결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는 후문이다. 조언만 하는 사람보다 함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더 절실하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훈수만 둔다는 답답함의 토로일 수도 있겠다. 난제가 많다.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활력을 잃은 경제와 사라지는 일자리, 낮은 출산율, 미세먼지와 원전, 교육제도 등 열거하기도 벅차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최종 책임자가 대통령인 것은 맞지만, 대통령 혼자 이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모두의 지혜를 모으고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지난한 과정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미국의 전 해군 제독 윌리엄 H 맥레이븐은 2014년 모교 텍사스 대학 졸업식 연실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고 말했다. 모든 문제가 대통령 때문이라고 탓하기에 앞서 각자 침대를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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