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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세렝게티 법칙을 출산에 적용하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졌다. 2017년 1.05명에서 지난해 0.98명으로 낮아졌다. 출생 통계를 작성한 1970년 이래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은 임신 가능한 연령대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다. 그러니까 한국 여성 대다수는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1명 정도 낳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원인을 간명하게 얘기한다. “애 낳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라고.

주변을 돌아보면 비교적 쉽게 수긍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올해 초 한 취업 포털 업체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원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 10명 가운데 1명만이 정규직 직장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15~29세 청년이 첫 직장을 갖기까지 걸린 기간은 10.7개월이었다.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장기간이다. 취업이 늦어지니 당연히 결혼도 늦어진다. 2017년 한국의 평균 초혼 나이는 남자 32.9세, 여자 30.2세였다. 1996년에 비해 각각 4.5세, 4.7세 많아졌다. 결혼을 해도 건강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하거나 낳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얘기다. 결혼을 앞둔 40대 직장 동료는 예비 배우자로부터 ‘출산 포기 각서’를 받았다. 아이를 갖기도, 키우기도 힘드니 아예 출산 포기 약속을 받은 것이다. 사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니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아직도 온갖 눈치를 감내해야 할 일이다. 복직을 위해선 어린이집 등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믿을 만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혹시 운이 좋아 들어간다 해도 늦게 퇴근하는 부모를 대신할 보조 양육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산 넘어 산이다.

외벌이로는 먹고살기가 어렵고 맞벌이를 하자니 아이를 맘 편히 키울 수 없다. 워킹맘들은 아침에는 직장으로 출근해 일하고 저녁엔 집으로 출근해 육아에 매달린다. 그러니 하나같이 하소연한다. 바늘 하나 꽂을 데 없이 팍팍하게 산다고. 집값도 비싸고 사교육비가 많이 들다 보니 낳아도 하나다. 둘은 엄두도 못 낸다.

한 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1990년 독일 통일, 1992년 구소련 해체 등 사회 급변이나 체제 붕괴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가 불안하면 대부분 자녀 계획을 미루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 외부 충격 없이 합계출산율 1명 선이 무너졌다.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결혼, 출산, 육아에서 받는 스트레스 수준이 국가 붕괴 시와 비슷하다는 얘기다.

동물들은 일반적으로 생존 환경이 열악해질 때 개체수를 줄인다. 아프리카 초원 세렝게티를 연구한 생물학자 션 B 캐럴은 기린과 같은 초식동물이 먹이 양에 따라 개체수를 조절한다고 밝혔다. 개체수가 평균보다 늘면 먹이가 부족해지고 영양실조로 죽는 기린이 늘어난다. 그러면 한 마리당 먹이 양이 많아지면서 기린 수는 다시 늘게 되고 일정한 개체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는 이 법칙을 ‘세렝게티 법칙’이라고 명명했고 모든 생명을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라고 주장했다.

낮은 합계출산율도 이 원리로 볼 수 있다. 저출산은 생산인구 감소라는 점에서 사회 위기로 보이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산 포기는 이기적인 행동”이란 비난은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게다가 인구 감소는 장기적으로 1인당 가용 사회 자원을 늘려 구성원들에게 보다 풍족한 삶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세렝게티 법칙을 출산율 상승에 응용한다면? 기린의 개체수 증가를 위한 조건은 풍부한 풀이다. 사람에게 이 ‘풀’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기린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욕구를 가진 인간에겐 기본소득과 안정된 주거 공간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가 아닐까. 어렵지만 모두 잘살기 위해 가야 할 초원의 길로 보인다.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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