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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찬희] 출산이 불편한 나라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결혼 생각이 별로 없다. ‘때’를 놓친 데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란다. 결혼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해도 애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1시간쯤 이어진 점심식사를 후배 A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저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게 뻔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어요. 무책임합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쉰인 B는 부인과 단 둘이 산다. 둘 다 열심히 사느라 애당초 아이 생각을 접었다. 20대에는 직장에서 적응하느라 건너뛰었다. 30대엔 내 집 마련, 자산 축적으로 숨 돌릴 틈 없었다고 한다. “40대 들어 조금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주위 친구들이 애 키우고 사는 모습을 보니 덧정없더라.”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힘겨운데. 그 애 밑으로 들어갈 노력과 눈물, 한숨, 돈을 생각하면 아득할 뿐이에요.” 아홉 살 딸을 두고 있는 대학 후배 C는 단호했다. 임신과 육아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출산 이후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못 박았다. “맞벌이는 아이 돌봐줄 ‘이모님’(육아도우미) 구하는 게 전쟁이에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해요. 초등학교를 가면 손이 더 가고요. 수시로 학부모 부르지, 아이 숙제도 챙겨줘야지, 돈도 품도 엄청 많이 듭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포스터를 보며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오밀조밀 앉아 수업을 듣던 시절을 살아서인지 지금의 ‘저출산 속도’는 당혹스럽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명 아래로 떨어지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구는 언젠가 0명이 된다(실제로는 여러 변수를 감안해 인구 유지의 최저선을 2.1명으로 본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84년에 2명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곤두박질해 지난해 0.98명을 기록했다. 한국의 여성이 평생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가 1명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지는 건 이례적 일이다. 전쟁, 경제위기 같은 특수한 외부 충격이 없으면 잘 벌어지지 않는다.

유례없는 저출산의 이유는 뭘까. 후배 A와 C, 친구 B는 모두 출산을 선택으로 본다. 그들 입장에서 출산 포기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들은 ‘아이가 불행한 나라’ ‘미래가 불안한 나라’ ‘육아가 힘든 나라’라고 이유를 댄다. 이 말들의 뒤에는 ‘경제적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다. 뼈 빠지게 일해서 평생을 모아도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집값, 대학 한번 보내려고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과 ‘학원 뺑뺑이’, 온갖 경력과 이력을 빼곡하게 채운 ‘스펙’으로도 넘기 어려운 취업의 문턱, 아이를 낳고 육아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불안해지는 여성의 일자리, 출산부터 육아에 이르기까지 무한대로 투입되는 돈과 어려움…. 종족 보존의 본능, 번식의 본능 혹은 아이가 주는 행복을 압도하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이를 ‘헤지(hedge, 위험회피 혹은 위험분산)’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저출산이 불러올 재앙은 무지막지하다. 가까운 미래에 유아용품, 산후조리원, 산부인과는 거꾸로 성장을 대비해야 한다. 꽤 많은 업종에서 폐업·감원 같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들을 것이다. 대학이라고 다르지 않다. 입학할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마당이니. 지방 도시는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가뜩이나 좁아터진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다. 지방의 상권·병원 등은 모두 붕괴할 수밖에 없다. 국방·치안·안전 분야에 종사해야 할 젊은이도 부족해질 것이다. 사회와 경제는 급속하게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해결에 143조원이나 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출산이 불편한 나라’다. 주거, 교육, 고용에서 근본적인 ‘종양’을 도려내지 않는 한 ‘인구 재앙’은 확고한 미래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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