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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황교익] “빨갱이”는 욕이다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빨갱이’ 뜻풀이이다. ‘속되다’를 찾아보면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고 풀었다. 빨갱이라는 말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자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대한민국에 공산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당장에 “나는 공산주의자다”고 밝혀도 대한민국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반국가단체 고무찬양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 악법 소리를 듣고 있는 국가보안법에서조차 헌법에 보장된 이 같은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지 공산주의자일 뿐인 사람에게 “너 공산주의자지. 나쁜 놈!” 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본주의자에게 “너 자본주의자지. 나쁜 놈!” 하고 비난하는 것과 똑같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사전적 의미에서 빨갱이라는 말에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는 판단이 붙어 있다. 물론 고상하지 못하고 천한 공산주의자들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선언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적이 별로 없으나 역사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인격적 감화를 받은 바가 있다. 베트남의 호찌민 묘소를 남북 정상이 모두 참배한 바 있으며,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들이 그의 묘소에 들르는 것을 보았다. 호찌민과 사상이 다르다 해도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고매한 인격까지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다들 동의하고 있다. 사상으로 인격을 논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다.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용하는 빨갱이라는 말은 전혀 공산주의자를 뜻하지 않는다. 보수우파 정당임을 표방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참여한 당원이 자신의 당원을 향해 “빨갱이”라고 소리쳤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씨는 민중당 시위대에게 “빨갱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만원씨는 “홍준표 주거지는 빨갱이 소굴”이라고 했다. ‘태극기 부대’는 시위에 거부감을 보이는 시민을 향해 “빨갱이”라고 외친다. 극우파는 우파가 빨갱이고 우파는 좌파가 빨갱이고, 그러면 좌파는 극좌파를 빨갱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빨갱이 딱지놀이를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빨갱이가 되고 말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빨갱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용어도 아니고 이념적 용어도 아니다. 애초 빨갱이라는 말이 탄생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아님이 분명한 사람에게도 빨갱이라고 하지 않는가. 빨갱이라는 말의 용례를 보면, 빨갱이는 욕일 뿐이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그러니까 “넌 고상하지 못하고 천한 인간이야” 하는 욕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욕을 하면서도 그게 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욕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욕을 하는 사람이 문제다. 한국 사회의 빨갱이 문제는 아무나에게 빨갱이라고 예사로이 욕을 하는 사람이 있어 문제인 것이다.

욕을 하면 시원하다. 일종의 배설 쾌감이다. “빨갱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이 욕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배설 쾌감이 필요한 이유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방어 본능으로 욕을 하는 것이다. 태극기 부대가 빨갱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유는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감이 흐려지고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빨갱이라는 욕을 자주 하는 정치인, 그리고 그 욕을 용인하자는 언론인 등의 심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의 주류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방어밖에 없고, 그래서 틈만 나면 빨갱이라는 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당분간은 빨갱이라는 욕설이 더 자주 들릴 것이다. 특히 남북 관계가 좋아질 때에, 친일 청산이 가속화할 때에, 적폐 세력을 처벌할 때에 빨갱이이란 욕설은 난무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욕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는 사람의 문제다. 누군가 당신에게 빨갱이라고 욕을 하면 웃고 넘기시라.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악을 하는 그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보내는 인격은 유지해야 사람답다고 할 수 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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