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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웰컴 투 웸블리, BTS!



이들도 미래가 불안한 가난한 연습생이었다. 회사 근처 좁은 숙소에서 이층 침대 몇 개 붙이고 복작거리며 살았다. 누구 생일이라고 상 하나 놓고 둘러앉으면 꽉 찼던 방이었다. 멤버 형 수능 전날엔 동생들이 몰래 도시락을 싸서 엄마 대신 전해줬다. 하루 15시간씩 연습하던 3년 동안 과연 데뷔는 할 수 있는 건가 걱정도 했다. 데뷔 1년4개월 후 2000명 앞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2013년 6월 13일 데뷔한 방탄소년단(BTS) 이야기다.

그랬던 이들이 오는 6월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무대에 선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맥스인 ‘라이브 에이드’가 펼쳐진 바로 그 공연장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최대 9만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웸블리는 가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이들 공연은 지난 1일 예매 시작 90분 만에 전석 매진됐고, 추가 공연까지 결정됐다. BTS는 퀸, 비틀스, 마이클 잭슨 등에 이어 웸블리 공연을 매진시킨 12번째 가수가 됐다.

이쯤 되니 BTS를 또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는 ‘흙수저 밴드’의 성공담을 넘어 K팝의 역사가 된 이들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말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 진심을 담은 노랫말, 팬들과의 탁월한 소통 능력은 이미 알려진 바. 여기에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의 리더십과 BTS 멤버들 간의 소통과 배려 등을 이야기하고 싶다.

방 대표는 지난해 말 한 경영전문지에서 선정한 ‘2018년 베스트 CEO(최고경영자)’에 주요 대기업 경영진을 제치고 뽑혔다. 리더십의 핵심은 자율과 방임. 그는 한 인터뷰에서 “모든 것에 자유를 주고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실력 있는 작곡가이지만 자신의 색을 입히려 하기보다는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이는 또래 팬들이 BTS 노래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발판이 됐다. 아이돌을 기획사가 관리하고 통제하는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미래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무릇 잘 되는 조직은 어느 한 명이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좋은 것을 흡수해 발전한다. BTS는 7명 모두 팬들로부터 고른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보통은 한두 명이 큰 인기를 얻기 마련이다. 인기는 수입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멤버 간 위화감이 생기고, 7년으로 된 계약기간이 끝나면 일부는 회사를 떠난다. 이것이 이른바 ‘아이돌 7년 징크스’인데 BTS는 이를 깨뜨렸다.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은 시점에 7명 모두가 재계약을 했다. 3년 재계약이라는 통례를 깨고 7년 재계약을 했는데, 회사와 멤버들 간 믿음과 애정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SNS에서 공유된 여러 영상을 보면 나이가 어린 멤버들은 곡 작업을 주도하는 형들을 존경하고, 형들은 동생들을 아끼는 게 느껴진다. 춤 노래 랩 각자의 장점을 배워 같이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데뷔 초와 비교하면 멤버 전원이 작사 작곡에 이름을 올리며 음악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BTS 안무에는 자기 파트를 하고 나면 아예 카메라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다른 멤버를 돋보이게 해 주려는 게 많다. 멤버 제이홉은 한 인터뷰에서 “노래나 랩의 파트를 정할 때는 개인 분량 욕심보다는 전체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하니 결과가 좋다. 트위터 계정도 처음부터 하나로 만들어 멤버별 팔로어 수 경쟁은 없다. 나만 돋보이려 하면 반짝 잘 될지는 몰라도 다 같이 오래가긴 힘들다.

BTS는 CEO의 가치관과 조직문화가 기업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팀이 없으면 개인도 없다는 철학, 리더를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조직. BTS 모델은 작은 회사의 치밀한 전략이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공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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