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김정은, 핵보다 경제다



핵 포기하기 쉽지 않겠지만 대북 제재 지속되면 경제난 가중돼 체제불안 심화될 것
과감하고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로 제재 해제시켜 경제개발 도모하는 게 최선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허무한 결과를 지켜보면서 ‘북핵 폐기는 과연 가능할까’라는 근본적 의문을 다시 갖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용할까. ‘아직은 아니다’일 것 같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은 수십년 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핵무기 개발에 전념해 결국 핵무기를 손에 쥐었다. 70여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온 초강대국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 서려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김정은이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협상 테이블에 나온 이면에도 ‘북한도 미국처럼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제는 3대 세습체제 보장과 경제발전을 위해 핵무기를 팔 시기라고 여긴 것이다. 비록 선언적 차원의 합의였지만, 1차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이 담긴 ‘센토사 선언’을 도출해냈던 배경이다.

2차 회담이 주목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1차 회담 때보다 북핵 폐기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태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핵 카드를 잘게 썰어 최대한 비싼 가격에 팔려는 살라미 전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미 용도 폐기된 영변 핵시설의 사찰 및 영구 폐기 대가로 대북 제재 해제를 고집했다. CVID를 위한 로드맵 제시나 핵 동결 수준을 넘어선 핵시설 및 물질 리스트 제출 등은 없었다. 더 중요하고, 더 새로운 것들은 숨겨두고 세상에 공개된 낡은 물건만 내놓고 높은 가격에 사라고 억지를 부리니 누군들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나. 혹여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태여서 덜컥 살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으나 오판이었다. ‘빈손 귀국’은 김정은이 자초했다.

북한은 2차 회담 뒤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재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키맨’은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이다. 관건은 핵이냐, 경제냐일 것이다.

김정은 앞에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폐기에 응하면서 그 상응조치로 대북 제재 해제를 얻어내 북한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그런데, 그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무리 없이 병행 추진하기가 여의치 않다. 핵을 전부 폐기한다면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 경제난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핵 없는 김정은’의 국제적 입지는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핵 있는 김정은’과 달리 큰소리를 쳐도 움찔하거나 눈길을 줄 국가들이 거의 없을 거란 얘기다. 또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되면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민주화를 갈망하는 여론이 북한 내에 확산돼 체제 불안이 가중될 소지도 있다. 핵협상에 임하되 ‘백두혈통’에 대한 오랜 우상화 작업의 결과가 훼손되지 않도록,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연착륙시켜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북한이 ‘단계적 해법’을 줄곧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킨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2차 회담 직전까지는 북한 의도대로 진행됐으나 2차 회담은 달랐다. 트럼프는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비핵화 로드맵을 갖고 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회담장을 빠져 나갔다. 김정은은 골치가 아플 것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선택지가 있다. 미국과의 협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방안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김정은이 생존을 위해 핵기술을 외국에 판매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적대 관계로의 회귀를 뜻하는 이런 선택은 김정은에게도 득이 안 된다. 경제 때문이다. 대북 제재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각종 지표들은 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걸 보여준다. 광물과 섬유 등 북한 주요 품목의 수출이 막혀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빠르게 퍼진 장마당들은 제재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외화벌이 주요 수단인 7만여명의 해외 북한 노동자들은 연말이면 귀국해야 한다. 제재가 지속될 경우 경제적 타격이 커져 주민들 불만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는 그럴듯한 구호만으로 끌어가기에는 북한 경제가 많이 나빠졌고, 변했다.

결국 제재를 완화시켜 경제 개발의 길로 가는 게 옳다. 그러려면 과감하고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 외 방도가 없다. 2020년은 김정은이 천명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해인데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이다. 의미 있게 맞이하려면 경제 성과가 필수다. 핵보다 경제다.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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