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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진창수] 다자 보장 틀 마련해야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큰 충격이다.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칠지언정 최소한 합의라도 하여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현실로 나타나지 못했다. 기대와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업적에 목말라 스몰딜(낮은 비핵화 조치)을 받아들임으로써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예측불허의 협상가’ 모습을 각인시키면서 정상 간 톱다운 담판의 우려도 날려버렸다.

하노이 회담은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최종 목표에 대한 확실한 동의 없이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미국의 최종 목표는 ‘핵시설은 물론 핵물질과 핵탄두, 미사일, 대량살상무기까지 완전 폐기’라는 점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종착점 명시에는 끝내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모든 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 이미 확보한 핵탄두와 물질은 그대로 보유한 채 영변 폐기와 추가 핵 개발을 중단하는 수준에서 전면적인 제재 해제와 맞바꾸려고 했다.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려고 하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번 회담 결렬로 당장 북·미 대화가 파탄 난 것은 아니지만, 양국의 비핵화에 대한 목표와 방법에 대한 인식 차는 비핵화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북한이 영변 폐쇄와 전면적인 국제 제재 해제를 교환하길 원하는 상황에서는 타협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비핵화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 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신고는 필수적이다. 즉 전체적인 로드맵이 그려지고 북한이 행동을 동반할 때 국제 제재는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신고를 자폭행위로 보면서 미국이 국제 제재를 완화해야 비핵화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로드맵 작성은 미국에 북한 공격 대상시설을 노출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신고를 하더라도 미국 측 정보와 다를 경우 북한 책임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불신으로 미국 주장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트럼프마저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이상 김정은이 바라는 해결책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결국 북한이 결단을 해야 비핵화가 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으로 각국의 북한 문제를 둘러싼 경쟁과 이합집산은 더욱더 분주해질 수 있다. 우선 북한은 국제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길’의 모색이 강화될 것이다. 당장 북한은 북·중 관계의 협력에서 시작하여 대러 관계의 개선 등을 통해 국제 제재의 구멍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이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는 것을 보더라도 북한의 의도는 잘 드러난다. 중국은 북한과의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통해 대북 제재 완화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서 중국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려는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을 위한 중장기 대외전략구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중 관계의 긴밀화를 통해 미국의 대중국 포위에 대한 견제를 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일본은 북·미 간 교섭이 지체되면 북한이 일본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현재의 비핵화 과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활용하려고 한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되면 진영 논리에 따라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인식 차는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 북·미의 인식차를 줄여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국의 역할은 각국이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협력과 남북 관계의 균형을 맞추면서 북한에 비핵화의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미국의 방안을 신뢰할 수 있도록 각국이 다자적으로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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