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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김대환] ‘촛불 청구서’ 불사르고 노동개혁으로



일자리 줄고 소득 불평등 확대 부른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확충을 통한 소득분배 개선 전략으로 수정해야

노동개혁 없이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허상일 뿐
노동시장 이중구조 혁파해 시장 활력 제고하는데 힘쓰길


‘더불어 잘 사는 경제’를 약속한 현 정부 2년차를 미감하는 시점의 경제사회 상황은 자못 염려스럽다. 더불어 잘 사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이지만, 정부 노력으로 단시간 내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현 정부 20개월 동안 사정이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되었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더 이상 전 정부 탓을 하거나 조금만 더 있으면 그 동안의 정책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등 ‘공세적 방어’ 모드를 유지하기에도 민망하게 되었다.

최근 발표된 가계소득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4분기) 소득분배는 전년 동기에 비해 급격히 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2003년 해당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악의 상태를 기록했다. 최하위 20%의 소득이 대폭 감소한 반면 최상위 20%의 소득이 증가해 5분위 배율이 전년 동기 4.61에서 5.47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그동안의 고용동향으로 이미 예고됐다. 일자리 가운데서도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고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고용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일자리 사정의 악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의 증대라고 정리될 수 있는데, 이는 ‘더불어 잘 사는 경제’의 제1전략인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의 실패를 의미한다. 제1전략이 실패한 이상 당해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상위 개념으로 설정한 ‘소득주도성장’을 내리고 ‘일자리 확충을 통한 소득분배 개선’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소득주도성장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개념, 이론, 현실성 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 실험적 정책의 중단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하지만 말 앞에 맨 마차를 타고서는 한 바퀴도 굴러갈 수 없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목소리 큰 조직(화)집단의 목소리에 말이 놀란 탓인지 마차를 마구 걷어찬다. 공공부문의 ‘묻지 마’ 정규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이러한 와중에서 이뤄졌다. 후자의 경우 뒤늦게 자영업자의 반발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다른 부문을 압박하는 식으로 보완되긴 했지만, 저임금 근로자 못지않게 사정이 열악하고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자영업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는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는 땜질 정책으로 이어져 결국 성장도 분배도 놓치는 참담한 현실을 초래한 것이다.

이를 필자는 ‘내부자 챙기기’라고 한 바 있는데, 언론의 직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단체의 ‘촛불 청구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 정부는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쳐 탄생되었고, 탄핵에까지 이르는 데는 촛불시위가 추동적인 역할을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노동단체는 촛불시위의 공을 내세워 적지도 가볍지도 않은 요구들을 내놓고 그 상당부분을 관철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정부나 산하 및 유관단체에 노조 간부 출신 상당수가 자리하고, 노동 관련 정책은 물론 전반적인 정책기조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직도 ‘촛불 청구서’는 힘을 잃지 않아 노동계의 추가적인 요구 앞에 정부여당이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언론보도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여당은 ‘촛불 청구서’를 과감히 불사르고 노동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촛불시위가 특정집단의 독점을 묵인한 바도 없고 사후 집권세력에게 백지 위임장을 준 것도 아니며, 정부여당과 노동단체의 과점적 지배를 허용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노동단체 스스로 ‘조직적 동원’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서도 이제 와서 촛불을 들먹이며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은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실근로시간 단축을 법제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완장치까지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공언하고 있는 마당에 ‘촛불 청구서’는 당장 불살라 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정부는 빗나간 전략을 수정하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내딛는 걸음은 반드시 노동개혁으로 향해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혁파하고 한국형 유연안전화 모델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때이다. 누더기가 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고 개편함과 더불어 직업훈련 강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더 많은 정책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 활력을 제고시킴으로써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통해 사회양극화가 해소돼 나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사관계의 이중구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는 담대한 노동개혁을 필요로 한다. 노동개혁 없이 ‘더불어 잘 사는 경제’는 허상일 뿐이다. 우리 시대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의 핵심과제는 노동개혁이기 때문이다.

김대환(인하대 명예교수·전 노동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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