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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이승우]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 에릭 파이는 1년 가까이 남의 집 벽장에 숨어서 산 여자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나가사키’).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서 착상했다는 이 소설은 내성적인 성격의 독신남이 자기 집 한 구석에 숨어 산 낯선 사람을 오랫동안 알아채지 못했다고 전한다. 여자는 남자가 회사에 있는 낮 동안 집안을 돌아다니며 먹고 씻고 읽고 햇빛을 쏘이다가 저녁이 되면 벽장으로 돌아가 잠드는 생활을 반복했는데도 말이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의 사연을 균형 있게 서술하지만, 독자는 남의 집에 숨어 들어와 살 수밖에 없었던 여자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집 안의 낯선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남자를 더 주목해서 읽게 된다. 그는 자기 집에 자기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1년 가까이 함께 그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카프카의 단편 ‘시골 의사’에는 이 상황에 대한 코멘트로 썩 어울릴 법한 문장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사를 하려고 집안을 정리하다가 언제 어디서 왜 구했는지,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수상한 물건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우리 집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집에는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한 것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만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시점에서는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도 있고, 어떤 시점에서도 유익했을 것 같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내부에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우리 안에는 우리가 입주를 허락한 사람만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한 사람만 들어와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승은 물론 라이벌도 있고,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그들이 나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나는 타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타인들 때문이다. 나는 종종 내가 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나무라고 내가 하지 않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후회한다.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 나와 그것에 대해 나무라거나 후회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들이 있다. 가령 혈액형이나 별자리나 교육수준이나 체질이나 걸음걸이나 적성검사나 성격유형검사 같은 것.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유일무이한 기준으로 삼아 맹신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고, 이 단순화는 왜곡이다. 사람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두 마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우주이기 때문이다.

집을 이루는 것은 집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에 따라 집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집주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집안의 물건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집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을 이루는 것은 사람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 안의 타인 역시,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의식한다면 통제, 혹은 관리하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안에 들일 사람을 정하는 데 신중해야 하거니와 이 소설처럼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몰래 들어와 살기도 하므로 주의 깊게 자기를 살펴야 한다.

직업이 기상관측사인 이 소설 ‘나가사키’의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기상관측사로서 나는 하늘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력은 길렀지만 이 지상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하늘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머리카락의 1만분의 1이 되는 초미세의 세계까지 측정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 혹은 누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정하는지 살피고 탐구하는 노력은 오히려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부는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과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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