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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이치로의 절제가 주는 교훈



언론사 입사 시험 준비에 한창이던 1995년 11월 어느 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TV를 켰다가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을 봤다. 가장 눈길을 끈 이가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돌풍을 일으킨 그를 TV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른 몸에 타석에서 오른발을 흔들며 치는 타격폼(시계추 타법)이 이채로웠다.

24년이 지난 올 초, 지난해 잠시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떠났던 그가 다시 현역으로 뛴다는 보도를 접했다. 객기로 보기엔 준비도 철저하다. 이치로와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했다. 그런데 46세 최고참 이치로의 체지방률이 7%로 가장 낮았다고 한다.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과 식단 조절 없이는 나오기 힘든 수치여서 미국에서도 화제다. 지난 23일 올해 첫 시범경기에서 2타점 적시타를 치더니 25일에는 노구임에도 도루까지 해냈다.

몸 관리가 필수인 스포츠계에서도 이치로의 행보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치로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다. 미국 진출 후 처음 7년간 아침식사는 카레만 먹었고 이후 피자로 바꿨다. 이것저것 먹으면 탈이 나 경기를 망칠까봐서다. 출근길 코스와 차선도 똑같은 방향으로만 갔고 정확히 오후 2시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배팅 훈련 방식과 스윙 횟수, 스트레칭 동작도 똑같다. 동료 투수 R. A. 디키는 “마치 (이치로가) ‘태양의 서커스’에서 곡예사로 부업하는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결벽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로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기에 관리와 절제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이치로의 현역 복귀와 함께 들려온 한국 프로야구의 소식들은 씁쓸함을 안긴다. 이치로가 체지방을 낮추고 있을 때 LG 트윈스 일부 선수들은 이달 스프링캠프 도중 카지노에 갔다. 이치로의 막내동생뻘인 심수창(38)과 조카뻘인 차우찬(32) 오지환(29) 임찬규(27)가 대상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같은 팀 윤대영(25)은 스프링캠프에서 귀국한 다음 날(24일)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차우찬은 4년 전 삼성 라이온즈 시절 동료들이 도박으로 추락한 모습을 본 당사자다. 지난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오지환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병역 혜택 파문의 중심에 섰다. 선수들의 각성을 통해 25년 만의 우승을 기대하는 팬들은 한숨 나올 일이다. 지난해 원정 숙소에서 여성들과 성관계한 것으로 알려진 키움 히어로즈(당시 넥센) 조상우, 박동원의 처리는 어떤가. 검찰이 지난달 이들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달 초 출장 정지 징계를 풀었다. 구단도 연봉만 삭감하기로 해 올 개막전부터 이들은 출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적 문제가 해결됐을지라도 선수들의 무절제가 가져온 심각성을 야구계가 외면하면 사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만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타자 최고령 이치로의 현역 생활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메이저리그 18년 통산 타율 0.311, 3089안타를 기록한 천재 타자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다. 다음 달 20~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개막 2연전만 치르고 퇴출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럼에도 이치로는 자신의 타격폼을 바꾸면서까지 열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비록 2경기로 야구 인생이 끝난다 할지라도.

헝그리 정신이 사라져간 한국 프로야구에 ‘이치로 정신’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관리가 지나치다는 주변의 우려에 대한 이치로의 대답은 우리 선수들이 한번쯤 곱씹어봐야 한다. “내가 지금 얼마를 받고 있나 생각한다. 그 연봉에 대한 책임감, 팬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메이저리그 나를 위한 지식플러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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