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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이도경] 국가교육위원회, 파국의 시나리오



2022년 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을 마치자 곧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한다. 새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수능을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단순하다 여기는 대중의 요구를 수용했다. 득표 전략상 유리하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그래서 정시 비율을 현행 30%에서 50% 이상 의무화하는 내용을 핵심 교육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대입 개편의 열쇠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쥐고 있다. 이 기구는 지난 정부가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만들었다. 정권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교육 정책 때문에 학생 학부모 고통이 가중되고 사교육만 성행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특별법에 근거한 독립 기구여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국가 교육과정과 교과서 발행 방식, 입시 정책만큼은 국가교육위 소관이다. 국가교육위는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정시 50% 의무화에 반기를 든다. 지난 정부 국정과제로 국가교육위 역점 사업인 고교학점제와 상극이란 이유에서다.

더구나 고교학점제용 교육과정과 새 대입 제도의 밑그림을 완성해 놓은 터였다. 국가교육위가 수능 비중을 줄이는 방침을 고수하자 청와대가 폭발한다. 가뜩이나 여당은 특정 교원단체에 우호적인 인물 위주로 꾸려진 국가교육위가 눈엣가시였다. 여당과 이 교원단체는 서로를 ‘적폐’로 여긴다. 청와대가 방아쇠를 당기자 국가교육위 폐지 법안이 신속히 발의된다. 야당은 반발한다. 국가교육위가 없어지면 정부가 교과서 발행 방식에도 손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더 완강하게 버틴다. 결국 주도권 다툼으로 번진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책임 있게 미래 인재를 양성하려는데 과거 정부 망령이 발목 잡는다.” “정시 확대는 인기영합주의다. 교육 정책의 일관성이 국민이 진짜 원하는 바다.”

여야가 대치하는 사이 정부는 국가교육위 고사 작전을 편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으로, 행정안전부는 인력으로 옥죈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같은 교육 유관 부처들은 국가교육위에 태클을 건다. 국가교육위는 국정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교육 정책은 섬처럼 고립된다. 교육감들이 국가교육위를 두둔하고 나서자 교육 현장은 난장판이 된다. 입시 제도의 불확실성 탓에 사교육비가 폭증한다. 학생 학부모의 비명에 정치권은 또다시 네 탓 공방을 이어간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을 가정해 꾸며본 가상 시나리오다. 굳이 정권 교체 상황을 가정한 이유는 국가교육위가 정권 교체 때 존재 이유가 드러나는 기구여서다. 국가교육위의 윤곽은 이달 중, 늦어도 다음 달 초 드러낼 예정이다. 박근혜정부 말기 교육부 폐지론으로 탄력을 받은 국가교육위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를 축으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논의에 끌어들였으며, 당정청 협의도 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이 바뀌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특별법 제정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암울한 시나리오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정책의 성공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줄어 인적 자원은 점점 귀해지고, AI가 얼마나 많은 직업을 잠식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교육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이제 누군가는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인재 전략을 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국가교육위를 꺼내놓을 때 몇 가지 의문에 답을 준비해놨으면 좋겠다.

야당 특히 야권의 잠재 대선 주자들과 어느 수준까지 논의할 생각인가. 국가교육위 정책에 반하는 공약을 내지 않도록 합의 가능한가. 다음 대통령이 손대기 어려운 중량감 있고 정치 중립적인 인사로 채울 수 있는가. 이념 색 뚜렷한 교원 단체는 어디까지 참여하는가. 단골 정쟁 소재인 교과서 정책은 야당 동의를 받아 국가교육위로 넘길 수 있는가. 국가교육위 정책이 원성을 산다면 국민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국가교육위를 만든 지금 정부인가 아니면 국가교육위가 힘을 발휘하는 차기 정부인가.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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