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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아침 출근이 두려운 까닭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승강장에는 이미 수백명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일반열차와 급행열차가 모두 서는 역이라 출근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북적인다. 개화역행 급행열차의 진입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흐르자 일순 술렁인다. 6량짜리 열차 안은 벌써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되도록이면 최대한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욱여넣는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들이미는 사람과 밀리지 않으려는 사람 간의 자리 전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신논현역을 지나 고속터미널역에 이르면 밀려들어오는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여러 차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열차를 놓치면 지각이라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승객 중 누구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밀집한 군중이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턱 막힌다. 사람들로 빽빽이 둘러싸여 옴짝달싹할 수 없다. 열차가 덜컹거리자 앞뒤 좌우에서 강한 압력이 온전히 전해져온다. 역마다 하차하려는 사람들과 승차하려는 사람들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내리려는 사람들을 위해 몸을 비켜줘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 고통 섞인 신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욕이 절로 난다. 수시로 흘러나오는 “선행 열차와의 거리 유지를 위해 잠시 멈춰 있겠습니다”는 안내 방송은 짜증지수를 더욱 높여놓는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따로 없다. 열차에 몸을 실은 지 20여분. 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역에 이르면 생존이 걸린 출근 전쟁은 비로소 끝이 난다.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고 다시 기다리는 건 퇴근 전쟁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출근길과는 비교가 안 된다. 빌딩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넘쳐나고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몇 분 몇 초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가득 메운 구름 인파 때문이다. 이 광경이 신기한 듯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람들도 보인다.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타려는 자들의 처절한 몸싸움에서 처지면 한두 차례는 열차를 그냥 보내야만 한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줄만 잘 서면 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다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들어갈 공간이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다. 탑승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열차 몇 대를 보내야만 그제야 몸을 실을 수 있다.

악명 높은 9호선을 이용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전쟁터는 오늘도 계속된다. 지난해 12월 1일 삼전역에서 중앙보훈병원역까지 8개역, 9.2㎞ 구간이 신설되면서 혼잡도는 더 심해졌다. SNS에는 “사회의 악을 다 모아놓은 지하철” “당신들은 살인자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열차 한 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겨넣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인가요?” 같은 이용객들의 원망과 아우성이 넘친다. 9호선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애초 승객 수요 예측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예측으로 열차를 다른 노선(8∼10량)보다 훨씬 적은 4량으로 편성했고, 2009년 개통 이후 서울 지하철 혼잡도 상위 10개 구간 중 6개가 9호선에 집중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는데도 증차 등 근본 대책은 미흡했다. 급행열차의 평균 혼잡도는 한때 240%에 육박했다. 정원 160명인 열차에 무려 384명이 탔다는 얘기다. 교통공학 전문가들은 혼잡도 200%면 화재 같은 열차 내 위급 상황이 생겨도 기본 대피가 어려워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혼잡도 100%만 돼도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지탱할 수 있지만 200%가 넘는 상황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칫 압사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시는 연장 노선 3단계 개통으로 주요 역의 혼잡도가 최대 21% 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한다. 급행열차를 모두 4량에서 6량으로 늘려 수송력을 높인 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실감하고 수긍하는 이용자는 많지 않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시민의 지하철’ ‘빠르게 안전하게 편리하게’라는 열차 안 홍보 모니터 자막이 나올 때마다 터져 나오는 욕설이 이를 입증한다. 긴 설 연휴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기분 좋은 추억을 뒤로하고 ‘지옥철’에 다시 몸을 실어야 하는 고충을 위정자들은 알까. 오늘 아침이 또 두려워진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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