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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준구] 댓글조작 유감



2006년 ‘바다이야기 게이트’ 당시 한 게임협회 소속 브로커가 정부 로비를 주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유명한 법조 브로커의 동생이었다. 다만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보도한 것에 항의했고, 사회부 내부 토론 끝에 익명으로 교체키로 했다. “차 한 잔 마시자”는 제안에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나란히 앉아 기사가 익명으로 바뀔 때까지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새로 고침’하면서 두 세 시간 얘기를 나눴다. 지금과 달리 일일이 포털사이트 뉴스편집팀에 이메일을 보내 기사를 수정하던 시기여서 시간이 제법 걸렸다.

마침내 익명으로 바뀐 걸 확인한 동시에 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게임 분야 실시간 검색어 10위에 그의 이름이 오른 것이다. 3초 정도에 한 번씩, 두 사람이, 두세 시간 이름을 검색한 수준만으로 분야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데 충분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포털사이트 규모가 크다. 검색어 조작 등을 일일이 손으로 할 수 없어 나온 편법이 이른바 매크로다. ‘드루킹’이 사용한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은 특정 기사를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거나, 특정인을 돕는 댓글에 추천 몰표를 주도록 짜였다. 이 사건으로 잠재적 대선주자로 언급되는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30일 구속됐다. 이를 보며 끊이지 않는 보혁 댓글 전쟁을 곱씹게 된다. 댓글은 여론인가? 그럴 것이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정치적 목적이 없는 일반인들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첫 번째 질문보다 확실히 답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부에서 보아 온 댓글의 전개 과정 때문이다.

기사 댓글은 되도록 모두 읽는 편이다. 매일 마감시간이 있는 기자들은 필연적으로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고, 부끄럽게도 미완의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다. 80점 수준의 기사에는 반드시 댓글에서 이를 지적하는 업계 종사자나 전문가가 있다.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 꾸짖음 또는 억울함이다. 이런 댓글은 생각날 때마다 다시 찾아가 읽곤 했다. 이런 습관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대통령 관련 기사는 포털사이트별로 댓글 내용이 뻔히 예상된다. 네이버 댓글에는 ‘좌빨’ ‘종북’ 단어가 차고 넘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쯤 탄핵이 예정돼 있는 무능 대통령이다. 다음 댓글을 보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적폐청산 철퇴를 맞을 예정이며, 문 대통령만 믿고 간다는 국민이 8할은 돼 보인다. 보수, 진보 진영이 각각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댓글을 선점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같은 구도는 문재인정부 출범 1년8개월간 깨진 적이 없다. 정권 초 청와대가 댓글과 SNS의 우호적 반응을 현안점검회의에 기쁘게 보고했던 모습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역시 진영 논리를 따르는 정형화된 댓글과 SNS 내용이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 드루킹 사건으로 댓글 조작 얘기가 나오자 한 청와대 관계자는 “연예인 팬클럽과 똑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돌 가수 기사에 팬클럽 회원들이 추천 몰표를 주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온라인 선거운동”이라고도 했다. 집집마다 선거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거나 정치인 기사에 댓글로 선거운동을 하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매크로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비판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여야 대선주자마다 댓글 전담팀이 있었다. 선출직 정치집단의 댓글 조작은 선량한 사용자에 대한 도덕적 배임이다. 일반인을 가장한 정치집단의 여론 교란용 속임수다. 시민의 정당한 정치적 언로마저 앗아가는 행위다.

매크로를 썼든, 집단 추천을 동원했든 댓글 순위를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건 모두 여론 조작이다. 후진 정치가 또 한 번 시대착오적 사고를 쳤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하찮은 작업의 대가로 공무원 자리까지 거론됐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강준구 정치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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