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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한승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심리적 한계선



‘유리 천장’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직원 중 적지 않은 수가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었던 어느 작업장에서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내가 그동안 거쳤던 일터에 가득했던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은밀한 적대감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평소에 자주 어울렸고 술도 함께 마셨다. 그렇게 다 같이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이곳에서만큼은 한국인이 외국인을 동등하게 대하고 있다는 그런 막연한 인상을 갖게 됐다. 그런데 하루는 현장직 관리자가 어느 한국인 직원과 동남아인 직원에게 크게 화를 냈다. 며칠 후 그가 한국인들만 있는 자리에서 이유를 들려줬다.

“아니, 접때 그 친구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자기 식대로 한다면서 막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외국 애들이 그거 아니라고 막 뭐라고 하는 거야. 똑바로 하라고. 내가 그걸 보니까 화가 확 치미는 거예요. 아니 걔는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그런 꼴을 보냐고요? 응고둡(가명)이 얘가 머리가 좋은 얘예요. 얘 친구들은 일은 잘하지만 생각을 별로 안 해요. 그치만 응고둡은 이거 이렇게 해요, 하고 건의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계속 생각을 하는 얘예요. 그런 얘들은 우리가 하는 거 금방 따라잡아요. 그러면 나중에 한국 사람들이 외국 얘들한테 이거 해, 저거 해, 하는 소리 들으면서 일할 거예요? 그건 아니죠! 어떻게든 한국 사람들이 걔들을 이끌고 나가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그게 맞는 거 아니에요?”

이 말은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심리적인 한계선을 보여주는 듯싶다. 다시 말해,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들이 반말을 할 수도 있고 그들이 한국인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아주 드문 경우였다) 결코 외국인이 내게 명령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라고. 외국인 직원들과 살갑게 지내는 한국인들도 “외국 애들 밑에서 일하느니 때려치우고 말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승태야, 니 사무실에서 괜찮게 보고 있다. 니 조금만 있음 조장 달아줄 끼다.” 의외였다. 나는 생산 실적이 우리 팀에서 가장 낮았고 새벽근무 때면 늦잠을 자다 30~40분씩 지각하기 일쑤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제가요? 웅이 형이 진급하는 거 아니었어요?” 웅이 형은 30대 중반의 길림에서 온 중국인 직원이었다. 그는 경력도 오래됐고 일도 워낙 능숙했기 때문에 다음에 진급할 사람은 이 사람일 거라고 다들 믿고 있었다. 과장님이 답답하다는 듯 대꾸했다. “웅이는… 일마야… 웅이는 중국아 아이가? 갸들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기라. 그래도 관리자는 한국 사람이 해야지.”

이런 반응들은 이주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것은 같은 일을 하는 고길동씨와 응고둡씨가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능력과 경력이 충분하다면 응고둡씨가 고길동씨의 상사 또한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에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다음 주면 설날이다. 명절이면 방송사에서 해마다 빠지지 않고 내보내는 방송이 있다. ‘세계 속의 한국인’ 같은 이름을 달고 방영되는 이런 프로그램에는 세계 각지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을 소개한다. 그중 많은 수는 정직과 성실함으로 현지 기업의 중역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다. 수십, 수백 명의 현지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명령을 하는 관리자들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박수치고 감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더 나은 삶을 찾아 타국으로 떠난 이들이 능력을 인정받은 것에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응고둡이 고길동의 상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면 방송국 홈페이지는 이런 글로 가득했을 것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남의 나라에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는 거지, 그 사람들 눈치 없이 왜 저렇게 나서는 겁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한국인 역시 한반도 밖에서는 이주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한승태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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