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소년의 도약



친구가 전지훈련을 다녀온 소년의 복근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몸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야물게 성장해 있었다. 일 년 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소년은 본격적으로 육상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깎아놓은 듯 선명한 복근은 그간 고된 훈련을 견뎌낸 결과물일 것이다. 소년의 이 놀라운 성장은 새로운 세대의 도약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우리 세대의 쇠락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슴이 뛰었다.

친자매와도 같은 친구가 첫 아이를 가진 후 불안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얼마나 용감하게 아기를 지켜냈는지 빠짐없이 기억한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던 날, 자매이자 친구로서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건강한 산모와 아기의 모습을 본 순간 든 안도감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기가 보고 싶어서 주말이면 두 시간도 넘게 걸리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곤 했다. 며칠 새 부쩍 자라 있는 아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아기가 뒤집고, 기고, 옹알이하고, 걸음마 하며 성장할 때마다 아기와 함께 성장하는 친구의 모습 역시 놀랍기만 했다. 친구를 도와 서툰 손놀림으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는 역한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아 신기했다. 손에 아기의 똥이 묻어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종일 칭얼대며 무언가를 요구하는 존재가 성가시지도 않았다. 마치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자주 설렜고 매 순간이 소중했다. 소년은 나도 아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존재였다.

그토록 작고 연하던 아기는 이제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힘껏 밀어붙이며 나아갈 줄 아는 소년이 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소년은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간은 방향을 놓치고 헤맬 수도 있겠지만, 소년에게는 소년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있다. 소년을 위해 존재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흔들리며 오늘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세대가 나아가려면 앞선 세대가 기꺼이 제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걸, 그들도 그렇게 이 세상에 나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소년은 지닌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며 원하는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얼마든지 흔들려도, 괜찮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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