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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청년들에게 ‘고함’



실업과 저소득으로 고통받는 청년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차원 아닌 구조적인 문제
국가 미래와 경쟁력 위해서는 한정된 재원을 청년들에게 우선 투자하는 정책 바람직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편집회의에서 남북 단일팀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이 크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의식도 민족의식도 없냐”고 말했다. 남북 단일팀을 만들기 위해 우리 국가대표 선수 몇 명이 대표팀에서 탈락해야 하는 상황을 놓고 젊은층에서 난리라는 담당부장의 보고에 남북 화해와 교류를 위해 그 정도 희생도 안 하려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을 비판하는 기사라면 몰라도 그런 주장을 단순히 소개하거나 옹호하는 기사는 쓰지 말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이게 젊은이들이 말하는 바로 꼰대짓이었다는 것을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됐다. 많은 노력 끝에 국가대표에 선발된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국가의 결정에 따라 대표팀에서 빠지고 생판 모르는 북한 선수가 대신 들어가는 상황에 대해 청년들은 감정이입을 하면서 분노했다. 나중에 우리 선수 명단은 그대로 유지하고 북한 선수를 추가로 합류시키는 선에서 일단락됐지만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 기억이다.

자라 온 환경이 달랐으니 꼰대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실 1980년대 중후반 우리 때는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맨날 데모만 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를 안 했어도 취직은 잘됐다. 대학 동기 상당수는 내가 알기로 학점이 4.0 만점에 2.0대밖에 안됐는데 대기업에 쉽게 취직했다. 기업체 원서를 두세 장씩 들고 골라서 가거나 졸업 후 대학원이나 고시 등 이런저런 진로를 고민하다 정 안되면 취직이나 해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것은 당시 우리 세대가 잘나서가 아니고 경기가 좋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즘 청년들이 취업을 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능력이 없거나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많은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취직이 안 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것도 우리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조다. 그래서 미안하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양질의 직장에 취직을 못하니 결혼도 늦어지고 애도 못 낳는다. 저출산 고령화에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들은 입시 과열과 고학력화의 교육 구조를 방치했다. 그래놓고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 임금 기대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비정규직이나 인턴으로 아무데나 취직해 워킹푸어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고 불공정하다. 청년들이 문재인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이런 잘못된 구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도 대단히 불공정하다. 누구는 군대 가서 고생하는데 특정 종교 출신은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청년들은 이것을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으로 보지 않고 진보성향이 우세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판결로 여긴다. 공기업의 고용이 세습되고 대통령 팬카페지기가 공기업 이사가 되는 것을 목격한다. 민주노총 산하 어느 노조가 사측에 요구하는 고용 우선순위 앞자리는 노조원 자녀들이 죄다 차지하고 맨 뒤에 대한민국 청년으로 돼 있는 것을 본다. 최순실 딸 이대 부정입학에 분노했던 청년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청년들은 피해를 받고 있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피해의식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어느 여론조사에서 청년 46%는 ‘지금 세상이 붕괴되고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아직 이런 분노들이 조직화된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청년들에게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아세안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출신이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청년들의 심정을 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러시아 혁명가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이나 독일 철학자 피히테의 ‘국민에게 고함’ 같은 메시지를 주지는 못할망정 상처 입고 눈물 흘리는 청년들에게 고함치며 힐난한 것이나 다름없다.

청년들의 문제는 청년들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활력과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청년에게 국가의 미래와 혁신과 성장동력이 달려 있다. 재원이 한정돼 있다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이 재원을 어디에 쓸지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책 ‘명견만리’에는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도 안되던 1970년대부터 청년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복지를 시작한 내용이 나온다. 재원 타령만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소득은 3만 달러를 넘었다. 재원을 사용할 때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만 의식하거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경기 부양하는 데에만 쏟아부을 일은 더욱 아니다. 청년에게 먼저 투자하는 것이 우리 미래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투자다.

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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