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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중도층은 가운데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과 이후 과정을 거치면서 중도층은 진화했다
그들은 어정쩡한 중간이 아니라 사안별 분명한 입장이 있다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능력을 보고 선택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해 말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중반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일단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80%까지 넘던 지지율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졌다. 국정운영능력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 시각의 비율도 엇비슷하게 나온다. 우리 정치 지형으로 볼 때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은 집권 초 열렬히 지지했던 중도층이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 민생 경제 악화 등의 이유로 이탈 조짐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상대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최근 한 조사에서 지지율이 27%까지 올랐다. 이탈 정도를 감안할 때 현 정권을 지지했던 중도층이 온전히 한국당으로 돌아선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대에서 헤매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회복했다. 굳이 관련 수치를 들이대거나 정교한 해설을 내놓지 않아도 이런 분석과 전망은 상식적이다.

전 정권에서 일어난 비상식과 비정상은 중도층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그 표가 모인 것이 문 대통령의 집권 이유다. 집권 3년차인 지금, 그 중도층이 돌아섰거나 돌아설 조짐을 보인다. 뭐가 달라졌나. 대통령과 여권의 민생경제를 다루는 능력의 부재, “뭐가 다르냐”며 기시감을 느낄 만한 정권 내부의 비상식적 일들의 발생 등으로 분석하는 건 너무 표피적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과 이후에 펼쳐진 과정은 중도층을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각성시킨 효과가 있다. 중도층은 단지 가운데 성향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제 과거 선거 전략에서 전통적으로 분류했던 중도층의 개념을 새로이,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중도층은 대략 세 종류다. 우선 특정한 정치지향성이 있으나 판단할 정보가 부족해 중도층으로 분류된 그룹이다. 둘째로 정치 무관심 또는 혐오를 갖고 있어 어떤 홍보나 설득에도 반응하지 않은 부류다. 셋째로 내면에 상호충돌하는 두 가치관이 있어 사안별로 나타내는 반대 성향의 응답이 상쇄돼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그룹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따져보면 중도층이 아니거나, 이른바 떠다니는 부동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겐 선거운동의 효과가 별로 없다. 세 번째 그룹을 진정한 의미의 중도층으로 분류하는 게 맞다. 노조 역할 확대를 주장하면서 외교 정책에선 강경 보수 정책을 지지한다든지, 보수적 투표 성향을 갖고 있지만 낙태 허용에 찬성하는 이들이 진짜 중도층에 속한다. 이들은 때로는 진보 성향 정책에, 때로는 보수 성향 정책에 환호한다. 모든 정치적 결정을 중간쯤에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구호가 대표적이다. 촛불시위 때 광장에 나간 이들 중에 두 번 연속 보수 대통령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이 지금은 철회 조짐을 보인다. 그들은 정치를, 사건을 사안별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이다. 이런 종류의 진짜 중도층을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내년 총선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총선 결과는 정권 20년 연장과 정권재탈환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냥 중간값을 선택할 사람들로 간주하고 선거 전략을 세웠다간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대규모 지지와 철회(조짐)는 그렇게 진화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중도층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은 어정쩡한 게 아니라 분명한 선택을 할 준비가 돼 있는 부류다.

몇 년 전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정치 다큐 프로그램에서 설문조사 대상자로 자신을 보수, 중도, 진보로 확신하는 사람 99명(3분의 1씩)을 모았다. 이들에게 ‘초등학생 무상급식 현행대로 실시’ ‘한·미 FTA 현행대로 실시’ ‘대기업 규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진보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 20가지를 물었다. 5점 척도로 1~5(찬성 1, 반대 5) 중에서 택하도록 했다. 평균값 결과는 보수 성향 집단 2.4, 진보 4.0, 중도 3.2였다. 여기서 중도를 분석해보니 이들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중간인 3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어떤 사안에서는 보수적 선택을, 다른 사안에서는 진보적 선택을 했다. 각각의 분명한 입장을 보였고, 이것의 평균값이 중간으로 모아진 것이다.

한때 여의도 필독서였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저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층은 없다고 단언한다. 중도층은 추상적으로만 존재할 뿐 결국에는 분명한 입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뿐이다. 중도층이라고 해서 사형제 찬반에 대해 사람을 절반만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레이코프가 민주당 성향의 당파성을 갖고 있지만, 이 분석 틀은 지금 우리 중도층을 해부하는 데 꽤나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 정권이든 야권이든 똑똑한 중도층을 어설프게 중간값으로 다뤘다간 쓴맛을 볼 게다. 그러니 선택을 받으려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내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 중도층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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