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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우리 안의 ‘스카이 캐슬’



내신 1등급은 오직 4명뿐. 1등급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살인자로 몰렸고 한 명은 이 사건으로 ‘멘붕’ 상태다.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금이 네가 1등급으로 올라갈 절호의 기회”라고 다그친다. 종영을 한 회 앞둔 드라마 ‘SKY(스카이) 캐슬’ 한 장면이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은 없다. 친구가 살인자로 몰려 경찰에 끌려가든 말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교실에는 적막만 흐른다. 그들에게 이런 감정 소모는 사치, 대한민국의 고3이다.

과장되긴 했지만 고교 3년을 관리해주는 수십억원짜리 드라마 속 입시 코디는 서울 강남의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원하는 대학 합격을 위해서라면 학교 시험지도 빼돌리고, 부모에 대한 증오심도 부추기는 냉철한 입시 코디에 시청자들은 혀를 내두른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분개하다가도 “아무리 너랑 네 남편이 성공했어도 자식 농사 못 지으면 네 인생은 쪽박이야”라는 예서 엄마의 독한 대사에 움찔한다.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놨잖아요. 어머니가.” 예서 아빠의 뒤늦은 한탄이다. 학력고사 전국 1등, 서울 의대 수석 합격,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병원장이 눈앞에 있는데 이제야 깨닫는다. 자기 인생에 정작 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집 딸 예서. 3대째 의사라는 가문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아이는 “엄마, 나 네 살 이후엔 한 번도 맘 편히 놀아본 적이 없어”라며 울먹인다. 집안에 대형 피라미드 모형을 들여놓고 꼭대기로 가야 한다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성적 앞에서는 쓰레기 같은 인성도 용서되는 세상. 그런데 스카이 캐슬은 드라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안의 스카이 캐슬은 더 무섭고 슬프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공정이 무시되고, 폭력까지 난무하는 현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 드라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높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입시에 대한 불신이자 대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불신의 핵심은 불확실성과 불공정성. 학종은 뚜렷한 기준이 없어 학생 입장에서 합격 여부를 예측하기 힘들다. 공정하지도 않다. “성적 빽 다 갖춘 애들만 모아서 특별반 만들어놓고 걔들한테만 스펙 몰아주는 거 애들이 모르는 줄 아세요? 교내 경시대회 정보도 걔들한테만 미리 알려주고 상도 몰아주고. 나머지 애들은 들러린가요.” 극중 혜나는 “아무리 학교가 입시 공장이 되어 버렸다지만 눈앞에서 대놓고 반칙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라고 항변한다.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공교육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교육 시장으로 향한다. 드라마 같은 수십억원대 코디는 못 붙여도 월 수십만원하는 학원은 보내야지, 부모들은 깜깜한 밤 꺼지지 않는 학원의 불빛을 보며 아이를 기다린다. 강남 명문고에서 전교 1등 하는 아이조차 예서처럼 철저하게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렇게 고단한 입시 전쟁을 통과한 아이들은 합격과 동시에 참고서와 교과서부터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스무 해 가까이 자신을 짓눌렀던 공부와는 작별을 선언하고 그때부터 내 꿈은 뭔가 찾기 시작한다. 물론 공교육을 믿고 학교 수업에만 충실해 원하는 성과를 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다.

조그마한 입시정책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던 학부모들은 내 아이의 입시만 끝나면 교육정책이 어떻게 되든 남의 일일 뿐이다. 정시 비율이 늘든 수시가 늘든 이제는 상관없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의 반짝 관심 속에 입시정책이 갈피를 못 잡는다. 교육 당국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니 자기 인생 없이 자식 입시에만 목숨 건 예서 엄마를 우리는 온전히 비난도 못한다. 우리 안의 공고한 ‘스카이 캐슬’, 어떻게 부수면 좋을까. 아니, 부술 수는 있을까.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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