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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휴매너티] 2019 CES 참관기 : 플랫폼 경제의 확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결성·알고리즘·데이터가 주요 요소, 이미 우리들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
삼성의 영상디스플레이 기술 단연 돋보여


세계에서 가장 큰 IT 관련 전시회가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다. 가전쇼(Consumer Electronic Show)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래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들을 전시하는 박람회다. 10년 정도 되었을까. 가전들이 컴퓨터와 결합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들이 컴퓨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칫솔도, 양변기도, 운동화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최적화’의 명목 아래 개인 데이터의 집적기가 되어간다. 온갖 전자기기들이 연결되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소위 ‘인간을 위한 최적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미래에 살게 될 스마트도시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이 필수다.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런 정도의 개괄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자율주행자동차에서 스마트시티까지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CES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장소이다. 말하자면 ‘~라 카더라’는 다소 정확하지 않은 정보 또는 거품을 넘어 실제로 어디까지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는지 직접 보게 되면 그 다음 전개 양상도 대략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소의 두 배가 넘는 항공료를 내고도 매년 수많은 인파가 CES에 몰리는 것이다.

내가 2019 CES에서 본 것은 한마디로 플랫폼 경제의 확장이다. 플랫폼은 기술, 자본, 사람들로 이루어진 디지털 생태계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나 CES에 나와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제품들의 뒤에 존재하는 디지털 경제의 실세라 할 수 있다. 흔히 아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거대 IT 제국들의 각축장이다. 요사이는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 플랫폼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이 가세했다. 이들 플랫폼은 에어비엔비나 우버와 같은 또 다른 플랫폼 기업들을 창출하면서 우리가 일하고, 관계를 맺고,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안드로이드나 IOS 같은 기반 플랫폼들은 파괴적 혁신의 대명사들이다.

플랫폼 경제를 기술적으로 요약하면 연결성(Connectivity), 알고리즘, 그리고 데이터이다. 이 세 가지 요인들에 의해 플랫폼의 가치가 결정된다. CES에 나온 수많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또는 미들웨어들도 이 관점에서 보면 쉽게 풀린다. 2019년 새로운 연결성으로 5G 시대의 도래를 기조연설에서 설파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 부스에서 5G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로 칩셋 메이커나 장비업체 중심의 제한적인 시도였고 실제 전시장에서는 과부하에 걸린 통신망 때문에 애를 먹었다. 오히려 눈길을 끈 것은 네이버(Naver)가 들고 나온 로봇이었다. 사람과 악수하고 포옹하는데(이것은 쉽지 않은 로봇 기술이다) 로봇의 두뇌는 몸체와 떨어진 곳에 있어 5G 기술로 거의 지연 없이 구현되었다. 네이버는 로봇과 자율주행차를 앞세우며 기술 중심의 산뜻한 이미지와 함께 플랫폼 회사로 CES에 등단했다.

CES 2019의 화려한 여주인공은 단연 삼성관이었다. 가장 값비싼 자리에서 가장 멋진 전시를 펼치고 있는 삼성관을 관람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다. 세계 최고의 영상디스플레이 기술인 QLED 8K에는 인공지능 칩이 내장되어 저해상도의 화질을 스스로 고해상도로 변환해 준다. 사운드도 인공지능으로 보정해 생생한 현장감을 살릴 수 있게 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필자도 현혹될 지경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LG관이 선보인 롤러블 TV(일명 두루마리 TV)도 영상디스플레이 기술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혁신의 선봉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굳이 TV를 저렇게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엔지니어링이 경이로웠다.

삼성관이 보여준 것은 최고급 영상디스플레이 기술만이 아니었다. 로봇과 인공지능(Bisby) 등을 앞세워 도래한 IoT 시대의 종합 솔루션 업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마치 외모가 출중한 여인이 머리도 좋고 체력도 우수한 팔방미인임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머리 좋고 체력·재력이 우수한 파트너와 결합해 더 좋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신랑은 결국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무장한 거대 플랫폼 기업 중 하나가 아닐까.

CES는 플랫폼 기업들의 전시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감은 자동차에서 오븐에 이르기까지 무겁게 다가온다. 아마존인가, 구글인가,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 어주어(Azure) 연합인가가 제품의 성능과 회사의 미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다. 예컨대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가 다소 아쉬운 디자인에도 주목을 끄는 것은 아마존과 연합해 필터를 자동으로 배달해 주기 때문이다. 바로 AI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시대이다.

플랫폼 거인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알고리즘적인 혁신과 대중으로부터 나온 개인 데이터이다. 거인들은 항상 데이터에 배고프다. 따라서 알고리즘적인 혁신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IT 업계 종사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보다 어떻게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CES에 선보이는 수많은 하드웨어 제품들을 볼 때의 관전포인트다.

웅웅거리는 전자기계들을 뒤로하고 전시관 밖으로 나오니 구글이 사람들을 잔뜩 모아 무슨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줄에 서니 대기시간이 2시간이란다. 장사진을 이룬 이 행사는 다름 아닌 헤이 구글(Hey Google)에 질문을 하고 대답이 나오면 방울 모자를 하나씩 받아가는 것이었다. 플랫폼 경제는 우리를 이렇게 길들이고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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