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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트럼프 리더십과 한·미동맹의 기로



‘계산된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트럼프, 대북 협상에서 70년 한·미 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어

공공·민간의 대미 외교 역량 총동원해 동맹 중요성 재확인시키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역대 최장의 셧다운 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았다. 트럼프 집권하에 미국 정치는 둘로 갈라졌고, 세계는 그의 말과 행동에 춤을 춘다. 트럼프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그 자체로 세계 정치학계의 논쟁거리다. 트럼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한국에서도 갈라진다. 트럼프를 진보 일각에서는 기분만 잘 맞추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활용론을 제기하는 반면 보수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에 북한에 놀아나는 인물로 폄훼하기도 한다. 일부 보수층 중에는 트럼프를 고도의 전략가로 추앙하는 ‘트빠’까지 생겨났다.

미국 전문 학자들의 대통령 평가에서 최고의 자리는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조지 워싱턴 등이 각축을 벌인다. 최고의 대통령들은 국가에 가장 필요한 일을 해냈고, 국민을 통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국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는 워런 하딩이다. 연예인 외모의 그는 대통령직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책임 회피와 권력의 사적 이용으로 대통령직을 부끄럽게 했다.

트럼프는 어떤 대통령으로 평가될 것인가. 아직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 그는 익숙한 대통령상이 아니다. 품격 있는 언어, 협력을 구하는 겸손한 리더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행동은 공격적이다. 트럼프와 함께 ‘협상의 기술’을 쓴 토니 슈와르츠는 트럼프가 아버지 영향으로 자기방어기제가 너무 강해 비판을 받으면 상대를 더 공격해 정당화를 꾀한다고 말한다. 두려움을 박살 내지 않으면 자신이 그 두려움의 포로가 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적과 친구를 갈라 치는 이분법 정치를 이용하는 것은 이런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트럼프가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통합지향적인 리더가 아니라고 해서 그를 천방지축의 지도자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예측 불가능하게 미국의 힘을 확인하려는 그의 리더십은 중국을 저지해야 하는 지금 마지막 남은 옵션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보수 진보를 떠나 미국의 핵심 전략이고, 이를 구사하는 데는 트럼프 스타일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다자 협상 구도에서 양자 협상 구도로 전환해 대부분 쟁점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켰다. 법인세 인하 등으로 경제를 활성화한 성과도 분명히 있다. 원래 미국의 외교 전통이었던 ‘각자도생’(고립주의· isolationism)을 순식간에 살려내고 있다. 그는 약속한 공약을 다 실천해 그 성과로 다음 대선을 치르려 한다.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소프트 파워 중시 관점에서는 트럼프가 현재의 이익을 미래의 이익과 바꾸는 위험한 지도자이지만, 손에 잡히는 이익을 중시하고 오지랖 넓은 개입주의의 거래비용을 줄이라는 현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영리한 지도자다.

트럼프가 던진 공은 한국 같은 나라가 받기 가장 까다롭다. 대한민국 70년은 ‘동맹’을 바탕으로 ‘자강’을 이룬 역사다. 한·미동맹은 군사 동맹을 중심으로 가치 동맹과 경제 동맹이 결합된 것이다. 동맹이 없었으면 자강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동맹의 미래에 대해 트럼프는 미국에 이익이 됨을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맹에 대한 적신호는 미국에서 계속 발신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인상,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맹의 의무로 동참하지 않고 중국 편에 선다는 의구심이 미국 조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여기에 트럼프는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이를 미래 한·미동맹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군 감축 및 철수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북 협상에 한·미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삼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의 지정학적 패권경쟁의 장기화와 북핵 문제가 결정적 갈림길에 있는 지금 한·미동맹의 약화는 한국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한·미 관계에 문제없다는 강변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행동주의자다. 이 국면에서 충동적이든 전략적이든 그의 행동은 한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의 진입이 아니라 사실상 북한의 핵 국가 용인이 되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또 한·미 방위비 협상이 실패로 끝나 한국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나서지 않도록 트럼프의 생각을 잡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바뀐 정세에서도 동맹은 자강과 발전의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뿐이다. 지금 ‘중한 것’은 공공 민간의 대미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기로에 선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계산된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이 학업엔 뜻이 없고, 남북 정상회담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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