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란다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면 북핵 해결 요원해지고 NPT체제마저 휘청일 것
주한미군 철수·감축 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가 포함된 제재 완화도 바람직하지 않아


북·중 4차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백악관 발표대로 내달 말 북·미 회담이 성사되면 뒤이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북·중→북·미→남북 정상회담의 선순환 구조가 수개월 만에 재작동하는 셈이다.

현재 관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2차 정상회담을 2월 말 갖기로 합의했다. 날짜와 장소는 정하지 못했지만, 의미가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고 있다. 경제난에 처한 김정은으로선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고, 국내 정치적으로 곤경에 몰린 트럼프로서는 외교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할 상황이다. 양측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개최될 공산이 크고, 양측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합의물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우려와 걱정이 나온다. 모두 ‘트럼프 리스크’와 관련이 있다.

첫째는 핵보유국을 향한 김정은의 집요한 전략에 휘말릴 가능성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더 만들지도, 실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며 이미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상태다. 북한 헌법 서문에도 핵보유국이라고 명기돼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초 김정은과 만나 ‘북한 주장은 응당하다’며 사실상 핵보유를 추인했다. 북한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트럼프 행정부에 무조건 핵보유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의 북한 태도와 한국과 미국에서 나온 얘기들을 종합하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일부 폐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우리의 핵보유를 용인해 달라’며 거래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발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ICBM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제한하는 내용과 영변 핵시설 등의 핵을 동결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려 할 것’이라는 이례적 언급이 근거다.

나아가 ‘북한 핵무기가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만큼 파키스탄의 경우처럼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면 통 큰 거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소지도 있다. 파키스탄은 1998년 6차례 핵실험 뒤 핵보유국임을 선언해 미국 등으로부터 제재 받았으나 핵실험을 중단한 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성공해 핵보유국 지위를 얻었다.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지원까지 받았다. 1990년대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 기술과 장비를 건네 받은 북한이 파키스탄 사례를 모를 리 없다.

미국이 간접적으로라도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순간 북한 비핵화는 요원해질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김정은의 친서에 현혹되지 말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란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 한·미·일 동맹을 손상시킬 수 있고, 일본과 대만 그리고 이란과 시리아 등이 핵을 갖겠다고 나서는 등 세계적으로 핵도미노 현상이 나타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차 회담에서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를 주의제로 삼아야 한다.

대북 상응조치에 관한 부분도 걱정이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게 주한미군 문제다. 실제 미국 내에서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을 맞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주한미군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해 북한에 전략적 손실을 계속 입혀야 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발언을 해왔다. 요즘도 미국이 왜 손해를 봐야 하느냐면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공개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담판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형국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느닷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한 바 있어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한·미 연합훈련의 영구 중단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진입 금지 요구마저 트럼프가 들어준다면 아찔하다. 우리나라 안보는 풍전등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은 관련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분명하게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이 포함된 제재 완화를 덜컥 약속해선 안 된다. 김정은에게 현금이 들어가는 통로가 만들어진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처럼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대북 제재 전열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카드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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