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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일을 주선하고 변통하는 재주·재간 ‘주변(머리)’



“이 시간에 이 꼴로 걸어서 왔단 말이냐. 사내자식이 주변머리가 있어야지….”

시오리 길을 걸어서 통학하던 중학생 때,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노는데 어둑한 밖에는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들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사는 데가 촌구석이라 여섯 시쯤이면 막차가 끊겼는데, 걸어갈 수밖에 없게 생긴 거였지요. 터덜터덜 집에 왔을 땐 젖은 온몸에 도돌도돌 소름이 돋고, 입술은 검퍼레져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식이 안타깝고 한심해서 뉘 집 처마 밑 같은 데서 죽치고 있다가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오든지, 혼날 각오를 하고 택시라도 잡아타고 올 것이지, 라면서 ‘주변머리’를 말씀하셨을 텐데, 그때는 하도 춥고 배고파서 주변이고 뭐고 귀에 안 들어왔습니다.

‘주변’은 주위나 둘레를 이르는 ‘周邊’ 외에 ‘일을 주선하고 변통하는 것, 또는 그런 재주’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곤경에서 벗어나거나 일이 잘되게 하는 방도를 찾는 재간이라 하겠지요. ‘머리’는 ‘인정머리’처럼 그 뜻을 낮춰 이르는 접사로 화딱지 등의 ‘딱지’도 같은 말입니다. 마음 씀씀이나 속마음, 마음보를 속되게 이르는 소갈머리, 소갈딱지가 둘을 잘 말해줍니다. ‘주변’은 대개 변통하는 재주나 융통성이 없어 일을 답답하게 처리할 때 ‘주변머리가 없다’처럼 쓰입니다. 일을 꾸미거나 해나가는 재간을 뜻하는 수완(手腕)이 주변과 비슷한 말입니다.

직권남용(職權濫用)으로 잡혀가는 이들을 봅니다. 직무 범위 밖 행위를 함부로 해서 일의 공정성을 잃게 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요. 별 죄의식 없이 한 그런 짓을 제 ‘주변’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함부로 처신한 후과일 것입니다.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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