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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이경훈] 美 지자체가 프랜차이즈를 금하는 이유



연말 친구 모임에서 화제는 단연 정년 후의 계획이었다. 창업이나 재취업, 귀농 같은 단어가 오가던 중, 지방 출신의 친구가 모두의 워너비가 되었다. 낙향이라는 근사한 은퇴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옛 선비 같기도 하고 왠지 단순한 귀향과는 느낌과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작 지방 소도시 출신의 친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본인은 낙향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명절 때 내려가는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교는 리모델링되었고 중학교는 이사했으며 동네 풍경은 프랜차이즈 편의점과 빵집과 커피숍에 대형마트까지 있어서 추억이 떠오르기보다는 서울의 어느 변두리에 있는 듯 기시감이 더하다고 한다. 친구나 친지도 남아 있지 않고 공간은 오히려 낯서니 낙향은 아예 선택지에 없다는 것이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랠프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땅덩어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공간보다는 장소가 필수이며 그 안에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장소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랜 시간에 걸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강력하게 인간의 존재와 장소의 관계를 정리한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 찬 세상에 산다는 것이라는 얘기다.

구멍가게가 편의점으로 빵가게가 베이커리로 진화하고 어디에나 같은 세련된 간판을 매다는 것이 개발이나 개선 또는 국토의 균형발전이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결과는 친구의 고향을 낯선 장소로 만들고 말았다.

장소를 잃고 단순한 공간으로 남는 현상을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비(非)장소’라고 부른다. 공간과 장소는 비슷하면서 혼동하기 쉬운 말이다. 대체로 공간은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3차원의 실체이며 인간 활동의 배경이다. 반면에 장소는 단순히 지구상의 한 점을 말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의미와 가치가 깃든 공간을 말한다. 건축가는 공간을 설계하고 완성하지만 개인의 일상생활을 통해 감정이 이입되어야 비로소 ‘장소’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오제에 따르면 인류학적으로 장소란 개인의 정체성과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관계 그리고 역사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결핍된 공간이 비장소라는 것이다. 기차역과 대형마트, 공항을 대표적인 비장소로 꼽는다. 예를 들어 공항은 세계의 어디에서나 비슷한 구성 원리로 배열되어 항상 익숙하지만 낯설다. 비장소에서 개인은 이름이나 정체성보다는 단순히 ‘승객’이나 ‘고객’으로 불린다. 개인 간의 관계는 일시적이며 상호작용은 스크린에 나타난 안내문이거나 기껏해야 매뉴얼에 따른 기계적인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없다. 따라서 비장소에서 사람들은 머물지 못하며 곧 떠나게 된다. 얼마 전에 들렀던 미국 한 공항의 대합실에는 의자가 하나도 놓여있지 않았다. 테러와 노숙자를 염려하고 몰아내려 ‘비장소’의 특성을 강화한 것이 분명하다. 누구도 머물지 말고 떠나라고 명령하는 공간이었다. 물론 오제는 비장소를 선악이나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비장소가 의미이든 사람이든 머물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리는 배제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환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비장소는 그 대상을 테마파크나 고속도로 휴게소, 심지어는 인터넷, SNS 같은 추상적인 공간으로도 확장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간의 이동성 때문에 생겨난 비장소가 평범한 우리 삶의 일상에까지 침투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대기업의 간판을 달고 있는 편의점과 제과점, 카페에서 일상의 언어 대신에 매뉴얼대로 대화하는 경험은 전형적인 비장소이다.

지방 행정가들이 참고할 만한 지점이다. 비장소를 반면교사로 삼아 장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인간적인 장소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인구를 늘리고 낙향을 부르는 고향이 된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비장소의 풍경을 반가운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작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프랜차이즈 상점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장소를 만드는 노력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친구의 낙향이 새해 첫 소원이 되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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