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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원재훈] 십계명과 바퀴벌레법



거미줄은 허공에 그냥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벽과 같이 단단한 것을 매개로 해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법망을 흔히 거미줄에 비유하는 이유는 거기에 걸리면 거미가 먹이를 물듯이 법관이 범인을 단죄한다는 의미다. 얼마나 단단한 기초에 있느냐에 따라 거미줄은 무너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사실 거미줄보다도 이 기초가 중요하다.

가끔 법은 도로의 신호체계와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30년에 가까운 운전경험에 의하면 비보호로 된 도로가 운전하기에 좋다. 붉은 신호나 초록 신호에 따라 가고 말고가 아니라 여유롭게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양보하고 배려하는 운전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의 어떤 면은 신호체계마저도 지키지 않고 광란의 질주를 하는 위태로운 나라이기에 이러한 바람은 어리석은 공상에 불과하다.

윤창호법을 비롯해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 법안들이 연이어 나왔다. 김영란법, 전두환법, 최진실법, 유병언법, 김부선법, 오세훈법, 신해철법 그리고 조두순법까지. 이들 법의 정식명칭은 따로 있지만 대부분 사건의 주목도나 홍보효과 때문에 특정인물의 이름을 인용한다. ‘윤창호법’은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음주운전 기준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이런 법안들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시사월간지에서 읽은 ‘바퀴벌레법’이 적혀 있는 페이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법이 바퀴벌레를 책으로 때려잡듯이 일정한 기준이 없이 눈에 띄면 벌레를 때려잡듯이 내리치는 두꺼운 법전과 같다는 것이다. 공명정대해야 할 법이 법관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서 잡아도 되고 안 잡아도 되는 바퀴벌레를 잡듯이 하는 법이라니. 이 말은 위에 열거한 기명법안에도 유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윤창호법이 생겼지만 음주상태로 고속도를 역주행하는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극악무도한 어떤 판결들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선고 내용을 비교해 보면 저것이 과연 바퀴벌레법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파렴치한 죄인들은 재빨리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바퀴벌레 같다. 그래서 법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보호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법망이 촘촘해도 잡을 수 없는 날벌레가 있듯이 법안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교양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물론 이 복잡한 세상에 다양한 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범죄를 단죄한다고 형량을 선고해도 과연 그것이 사건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예를 들면 조두순이 그렇다. 피해자들이 범인의 출소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자식이 아비의 극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이러한 범죄로부터 우리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수천수만 가지의 법안을 만들고, 심지어 외우기 쉽게 인명을 붙인다고 우리가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해 법관이 필요 없을수록 좋은 사회다. 우리는 차가운 법의 거미줄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거미는 법관과도 같은 것이다. 이 법의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바람과 같은 사람이고, 향기와 같은 사람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모세의 십계명만으로도 충분한 세상을 꿈꾼다. 우리 사는 세상에 열 가지 정도의 법만으로 치안이 유지되고, 국민들이 안녕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세상은 요원하다.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십계명은 현대의 복잡한 법으로 이어져 우리들에게 수천수만 가지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 모든 ‘하지 말라’는 예수의 숭고하고 거룩한 긍정의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랑‘하라’.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의 가치를 생각하는 마음이 왜 이리 무기력한지 모르겠다.

원재훈(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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