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나무라서야



드루킹 이어 김태우·신재민에 대한 여권의 인신공격과 비난, 조롱, 압박 지나쳐
현 정권에 실망한 그들은 ‘이게 나라다운 나라냐’고 묻고 있어


새해 초, 정국이 어수선하다. 여권의 표현을 빌자면 ‘미꾸라지’(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와 ‘망둥이’(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가 그 중심에 있다. 그들의 폭로는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여권 인사의 비리 첩보 묵살, 민간기업 사장 교체 시도, 국채 발행 압박 등등.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권이 자랑해온 도덕성은 허울뿐이고, 탈탈 털기식 수사를 통해 적폐로 낙인찍은 지난 보수정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권은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말하지만, 개연성이 없다고 단언할 순 없는 상태다. 거짓으로 일축하기엔 폭로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다. 김태우와 신재민 모두 개인의 일생이 걸린 모험에 뛰어든 점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야의 정쟁거리로 변질되면서 진상 규명은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여권은 “그들 주장은 전부 거짓말이며, 희대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그들은 공익제보자이며 현 정권은 양두구육 정권”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야당은 특검과 국정조사, 관련 상임위 소집을 요구하는 반면 여당은 야당을 향해 “참 지저분하다”고 반격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이 발생하면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검찰 손에 맡겨지는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거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사라질 때가 됐을 법한 관행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두 사건의 진실을 알려면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게 된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김태우 신재민 사태에서 거슬리는 점이 있다. 폭로자 개인의 신상이나 비위에 초점을 맞춰 개인일탈로 몰아가는 프레임이 그것이다.

내부고발이나 폭로는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때마다 역대 정권들이 썼던 게 개인일탈 프레임이다.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 이건 사실이고, 저건 거짓이고, 그건 제보자가 오해한 것이라는 등의 세세한 해명은 없다. 대신 고발자의 사생활을 들춰내 거짓말쟁이나 비위 혐의자로 몰아붙인다. 폭로의 신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부정적 여론을 희석시켜 집권세력이 입을 상처를 가능한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배경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내부고발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보여줘 입 단속하려는 의도도 있다.

역대 정권과의 차별성을 유달리 강조해온 문재인 정권은 좀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다. 차분한 설명은 거의 없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우월적 선민의식을 앞세워 개인일탈 프레임을 강하게 적용하고 있다. 김태우 사건에 대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비위 행위자의 일방적인 허위주장”이라고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파렴치한 범법자”라고 비난했다. 신재민에 대해선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가 뛰는 꼴” “일확천금을 꿈꾸며 폭로한 것으로 가증스럽다” “사기꾼” “풋내기 사무관”이라는 인격비난과 조롱이 여권에서 쏟아졌다. “응분의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압박도 했다. 두 사람은 결국 고발됐고 조만간 형사처벌될 상황에 처했다.

똑같은 일이 지난해 3월에도 있었다. ‘드루킹 파문’ 때다. 드루킹 사건은 민주당의 고발로 이뤄진 경찰의 댓글 조작 수사결과 드루킹(김동원) 등 민주당원 3명이 구속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당시 드루킹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위해 자신이 이끌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을 통해 댓글 순위를 조작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와 만나 허락을 받았다고도 했다. 여권 심장부를 정면으로 겨냥하자 여권은 “여기저기 권력을 지향하며 정치동냥을 했던 신종 브로커의 일탈행위”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해 6월 지방선거 판세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빗나갔다.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김 지사도 당선됐다. 정치공방이 격화되면서 현 정부 지지세력이 더욱 뭉친 것이다. 드루킹 사건 당시의 학습효과가 요즘에도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민심을 수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겨냥해 때가 묻었느니, 손가락이 이상하게 생겼다느니 엉뚱한 말을 해대면 누가 납득하겠나. 오히려 ‘여권이 왜 저러지? 구린 데가 있나?’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현 집권세력은 박근혜정부 시절 내부 고발자들을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의인들’이라고 치켜세웠던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김태우 신재민 드루킹은 한때 이 정권을 위해 일했거나 공직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그들이 현 정권에 배신감과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는데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게 나라다운 나라냐’고 묻고 있다.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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