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몰리는 연말연시 극장가, 한국영화계는 울상이다. 흥행 배우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대작들이 줄줄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화가 승기를 잡은 가운데, 급기야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 두 달째 장기 흥행하며 누적 관객 920만명을 넘어섰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개봉한 DC의 히어로물 ‘아쿠아맨’이 전날 관객 약 28만명을 추가하며 박스오피스 1위(누적 349만명)를 차지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하루 차로 개봉한 ‘PMC: 더 벙커’(전날 16만명·누적 118만명)와 ‘범블비’(11만명·116만명)를 나란히 제친 것이다.

하정우와 이선균이 주연한 ‘PMC: 더 벙커’는 개봉 3일째까지 1위를 지키다 ‘아쿠아맨’에 다시 정상을 내줬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점차 점유율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남북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미국 민간 군사기업(PMC) 용병들의 작전 수행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서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메라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표현한 촬영 기법 또한 관객에게는 낯설게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현장성을 높이고자 한 시도였는데 결과적으로 이질감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실제로 관람 도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도리어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재해석한 ‘범블비’에 호평이 이어지며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마약왕’과 ‘스윙키즈’는 일찌감치 흥행 동력을 잃었다. 20대 배우 도경수를 앞세운 ‘스윙키즈’(누적 126만명)는 탭댄스라는 생소한 소재와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후반부 전개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송강호라는 이름값에 기댄 ‘마약왕’(181만명)은 “그동안 익히 봐온 한국영화의 짜깁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기대작 3편 모두 예상을 밑도는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12월 한국영화 흥행 스코어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외화에 뒤졌다. ‘신과함께-죄와 벌’ ‘1987’ ‘강철비’가 나란히 흥행한 2017년 12월엔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78%에 달했지만, 지난달에는 47% 수준에 그쳤다. 국산 대작 3편 ‘안시성’ ‘명당’ ‘협상’이 맞붙어 고전한 지난 추석의 악몽이 재현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각 작품의 완성도가 관객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블록버스터라면 블록버스터답게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하는데 세 편 모두 그런 점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대부분 ‘분노 자극형’에 그치면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대형 영화들이 성수기에 몰리는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윤 평론가는 “배급보다 영화 내부적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 역시 “좋은 영화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배급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현재 한국영화는 그 자체의 다양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