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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의 해’… 인류 난치병 극복 새희망 열까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조성용 연구원이 지난 26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자원연구센터 내 사육실에서 각막과 췌도이식 임상시험용 무균 미니돼지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제공




2004년부터 이종장기개발 연구, 돼지로 당뇨·실명 극복방법 찾아
법규 없고 정부 소극적… 좌초 위기, 최근 세포치료제 준해 관리 방침
각막이식 임상시험신청 선시행, 승인나면 곧장 대상자 2명 선정
췌도이식도 올해안에 추진 방침, 이식 따른 면역거부 반응 해결과 미지의 감염위험이 해결 숙제로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가 밝았다. 돼지는 예로부터 복(福)과 다산(多産)의 상징이었다. 인간 곁에서 살며 고기와 기름 등 귀중한 식량도 제공했다.

그런 돼지가 올해 대한민국에 난치병 극복의 새희망을 선사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돼지의 각막과 췌도(인슐린 분비 조직)를 각각 시력을 잃은 사람과 중증의 1형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국제 기준에 맞춘 임상시험으론 세계 최초다.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한국은 단숨에 이종(異種)장기이식의 세계 중심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한켠에 자리한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를 찾았다. 이곳 1층에 마련된 특수시설에 이종 장기이식 연구용 ‘무균 미니돼지’ 5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2004년 시카고의대 김윤범 교수가 24마리를 무상기증한 게 시작이었다. 그간 교배를 통해 태어난 400~500마리가 연구용으로 쓰였고 지금의 마리 수를 유지하고 있다.

미니돼지는 일반 돼지와 크기가 다르다. 농장돼지는 다 자라면 체중이 300㎏에 육박하지만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60~80㎏정도 밖에 안된다. 무균환경 유지를 위해 매년 국내외 전문업체를 불러 철저히 검역하고 있다. 사료도 동물성 단백질이 아닌 식물성 옥수수기름을 사용한 것만 쓰고 있다.

조성용 연구원은 사육장 제일 안쪽 우리를 가리키며 “조만간 진행될 각막과 췌도이식 임상시험용으로 점찍은 돼지 8마리를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용으로 보내질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면서 “이번 임상시험이 잘 돼서 애써 키워온 돼지가 대한민국, 나아가 인류 건강과 난치병 극복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좌초위기 임상시험, 돌파구 마련

무균 미니돼지의 장기와 조직, 세포를 사람에게 옮겨심는 임상시험은 이종이식 연구의 최종 단계다. 2004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1, 2차로 나눠 진행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은 15년간 연구를 통해 돼지 췌도로 중증의 당뇨병을 치료하고 돼지 각막으로 실명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원숭이를 이용한 영장류실험(전임상시험)에서 자체 개발한 세계 최고수준의 돼지 췌도 분리 기술과 면역억제제의 효능을 입증했고 국제 학술지에도 공식 발표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종이식 관련 국내 법규가 없고 관리·감독 정부 부처 마저 애매해 임상시험 자체가 좌초될 처지에 놓였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2013년부터 수차례 문의했으나 각막과 췌도를 장기로 볼지, 세포치료제로 볼지를 놓고 두 부처 간 떠넘기기 상황이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정부 부처가 시큰둥하자 사업단은 지난해 10월 국제 이종이식 전문가 7인을 초청해 임상시험에 대한 심의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복지부가 움직였고 식약처도 태도를 바꿔 각막과 췌도이식 임상시험이 세포치료제에 준해 추진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사업단 박정규 단장(서울대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은 31일 “식약처와 지난 11월 이후 몇차례 사전 미팅을 하며 세포치료제로 관리 및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이런 작업이 끝나면 각막이식에 대한 임상시험신청(IND)을 췌도이식보다 먼저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의약품처럼 상품화를 위한 상업화 임상이 아닌, 우선 소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연구자 임상시험으로 진행된다.

그는 “오는 5월 사업단의 사업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2명의 각막이식 임상시험 가운데 1명에게 먼저 시행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1명을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특히 돼지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을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따져 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돼지 등 동물과 사람간 이종이식 관련 가이드라인은 국내 뿐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국도 없다”면서 “향후 국내 이종이식 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업단은 임상시험 일정이 5월 사업 공식 종료 시점을 넘기는 상황에 대비해 복지부에 사업 기간 연기도 요청했다. 아울러 추가 국가연구과제를 따내거나 정 안되면 벤처기업 창업도 고려 중이다. 박 단장은 “연구 지원금이 없으면 지금까지 꾸려온 최고 수준의 연구인력과 실험장비를 잃을 수 있는 만큼, 임상시험과 이종장기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벤처기업 창업도 깊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각막이식 상반기에 먼저 시작

췌도이식에 앞서 임상시험이 시작될 돼지 각막이식은 서울대병원 안과 김미금 교수의 책임 아래 진행된다. 식약처 승인이 나면 바로 대상자 2명의 선정작업에 들어간다. 각막이식의 경우 일찌감치 서울대병원기관윤리위원회(IRB) 승인을 받아놨다.

선정 기준은 만 19세 이상이며 양쪽 눈이 각막 문제로 실명한 사람으로 각막이식 외에 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경우다. 임상시험에 동의해야 하고 6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진다. 동물 각막을 이식하는 데 따른 정체성 혼란을 우려해 정신과 상담도 진행된다. 각막은 중심부에 혼탁이 발생하면 시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혼탁 발생 부위 전부를 떼내고 돼지의 신선한 각막을 이식하는 전층이식이나 부분층 이식으로 이뤄진다.

윤창호 서울대병원 안과 임상강사는 “지난해 기준 국내 각막 이식 대기자는 2122명이고 기다리다 이식받기까지 2564일이 걸린다. 대기기간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면서 “돼지의 각막이식은 이런 기증 각막 부족과 오랜 대기 문제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돼지는 인간과 오래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인수공통감염병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장류 각막이식 실험에선 특별한 감염 이슈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사람에게 이식할 때는 모르는 상황이라 이식 후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췌도이식, 올해 돌입 목표

2명의 중증 1형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인 췌도이식 임상시험은 가천대길병원 내분비내과 김병준 교수가 실무 책임자다. 대상은 19세 이상으로 1형 당뇨병(2형도 오래되면 대상 가능)으로 5년 이상 입원했거나 장시간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환자다. 또 1년에 2번 이상 심각한 저혈당으로 입원한 경우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췌도이식은 10㎝ 가량 되는 돼지의 췌장을 떼낸 뒤 그 안의 췌도(세포 형태)를 분리해 생리식염수와 섞어서 환자의 간문맥(위장과 간 사이 혈관)을 통해 주사로 주입한다. 그러면 췌도가 모세혈관들에 생착해 인슐린을 분비한다.

돼지 1마리당 20만~30만개의 췌도를 분리할 수 있는데, 분리 기술이 핵심이다. 몸무게 60㎏의 환자라면 60만개의 췌도가 필요해 3마리 정도의 돼지가 있어야 한다.

김 교수는 “각막이식과 비슷한 프로세스로 진행되더라도 췌도이식에 대한 식약처 승인과 환자 모집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볼 때 올해 안에 임상시험 돌입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돼지 췌도를 이식받을 수 있는 중증 1형당뇨 환자는 약 40만명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2000년대부터 부족한 장기 문제를 해결하려 이종 장기 공여 동물로 원숭이 보다는 돼지에 더 주목해 왔다. 영장류는 멸종 위기종인데다 한번 태어나는 개체수가 적고 성장 속도도 느리다. 영장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기엔 크기도 작다.

돼지의 모양새는 인간과 다르지만 몸속 구조가 비슷하다. 돼지는 임신 기간이 보통 114일로 짧고 한번에 5~12마리의 새끼를 낳으므로 장기 획득 면에서도 이롭다. 인간에게 적합한 크기의 장기를 얻기 위해 돼지 크기를 작게 개량한 미니돼지도 생산 가능해졌다. 다만 이식에 따른 면역거부 반응 해결이나 미지의 감염 위험은 여전히 해결숙제로 남아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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