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제왕적 청와대’가 미꾸라지 키웠다



청와대 특감반에 의해서만 국내 정보 수집되는 만큼 권한이 남용될 여지 커
본질 벗어난 우왕좌왕 해명과 언론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 등 청와대 난맥상 실망스러워


청와대 특별감찰반 파동은 청와대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감반 6급 수사관(김태우)인 미꾸라지 한 마리를 상대로 관련 참모들이 모두 나서서 전면전을 펴다 결국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선회했으나 초동 대응부터 최근까지 청와대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미꾸라지의 치밀한 공격으로 수세에 몰리자 당황한 탓인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가장 우월하다는 오만함과 언론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 등 스텝이 꼬여 불을 끄기는커녕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 집권세력의 ‘내로남불’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참사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되고 검찰의 범죄정보 활동도 사라졌다. 공직자 비위와 연관된 정보 수집은 청와대 특감반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독무대이니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재인정부는 ‘청와대정부’라고 불릴 만큼 청와대 권력이 막강하다. 정부부처 간부 인사도 사실상 청와대가 좌지우지한다. 특감반원이 작성한 문건은 승진과 전보 인사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하루아침에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 대상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청와대 특감반원이 갑자기 연락오거나 찾아와 이런저런 추문을 캐물으면 오금이 저리지 않을까 싶다. 장관도 이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다. 권한이 남용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보는 달콤하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과 관련된 비위 첩보를 포함해 고급 정보에 목말라한 정권이 적지 않았다. 특검반의 투명하고 엄격한 운용을 약속하지만 월권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미꾸라지가 태어난 배경이다.

청와대는 미꾸라지에게 1년 이상 온갖 곳을 뒤지게 했다. 그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도 특감반원이었다. 적폐 청산 작업에 그가 갖고 있던 보수정권 첩보들이 일부 활용됐을 법하다. 발군의 정보 수집 능력을 인정받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청와대의 한 식구였던 그가 돌변한 데에는 배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상관 지시에 따라 혹은 항간에 나도는 여권 인사들 비위를 캐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청와대가 비위 같지도 않은 비위를 이유로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비위 혐의를 덮기 위한 일방적 주장이며 개인 차원의 일탈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발언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청와대의 다급한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그런 반응은 부적절했다.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를 계속 기용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부터 하는 게 순리였다. 느닷없이 ‘미꾸라지’가 돼 버린 김태우는 ‘미꾸라지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는 투로 공격카드를 계속 내놓고 있다.

핵심은 민간인 사찰 부분이다. 김태우는 상급자 지시나 허락 또는 조율을 거쳐 민간인 사찰이 수시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다른 감찰반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야당 정치인과 교수, 언론사 등 제기된 민간 사찰 정황은 적지 않다. 보수 정권의 대표적 적폐로 민간 불법 사찰을 꼽은 뒤 일벌백계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박근혜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죄다 공개한 정부로서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문재인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뚱맞은 해명과 상급자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사관 스스로 만든 ‘불순물’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하지만 본질을 벗어난 해명이다. 국민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민간인 사찰로 추정되는 문건들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언제,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언론에 대한 태도 역시 부적절했다. 청와대는 “비위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우의 말에 언론들이 휘둘려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휘둘림을 알면서도 휘둘림을 당한 건지, 모르면서 당한 건지 여러분이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언론인 여러분, 더 이상 급이 맞지 않는 일을 하지 맙시다”는 말도 했다. 다분히 감정적이다. 감찰반 문건 파동의 진원지인 청와대가 마치 언론에 책임이 있는 양 엉뚱하게 화풀이하는 모양새다. 졸지에 돌아온 특감반원들을 감찰해야 할 검찰과 경찰 내에서도 청와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떠넘겼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자성이 먼저였다.

2018년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2019년 새해를 설계해야 할 때다. 내년은 문 대통령 집권 3년차다. 3년차에는 여권 인사들 비리가 터지기 일쑤다. 역대 정권들이 그랬다. 조만간 미꾸라지는 구속될 것이나 그게 끝이 아닐 듯하다. 새해, 더 큰 시련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제왕적 청와대’부터 바꿔야 한다.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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